'긍정의 배신'을 읽고 - 긍정주의라는 욕망의 전차

 

 

  현실에 눈을 감은 채 맹목적으로 밝은 미래만을 꿈꾸는 ‘긍정적 사고’의 폐해는 동·서양을 구분 않고 역사 속에 늘 존재해 왔다. 1583년 조선의 어느 날, 대학자 율곡 이이는 왕을 찾아가 “나라가 태평하니 군대와 식량이 준비되지 않아 왜구가 침략해 와도 막을 수 없습니다.”라며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지 모른다는 소식에 왕은 황윤길과 김성일을 일본에 보내어 정황을 알아오도록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왔는데 결국에는 상황을 낙관하고 전쟁 준비를 반대한 김성일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그로부터 10년 뒤 일본은 20만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20여일 만에 한양을 점령했다. 당시 분열되고 무력하던 조선에 필요했던 것은 암울한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현실적이고 냉혹한 조언이었지만 붕당정치의 혼탁함 속에 왕은 그저 장밋빛 조선을 꿈꾸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개개인마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겠지만 바버라 에런라이크에 의하면 우리의 삶은 한층 더 혼탁해지고 암울해졌다. 19세기 경 미국에서 태동한 낙관·긍정주의는 시대를 거쳐 가며 한층 더 체계적이고 시스템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절망적이어도 맹목적으로 긍정적인 미래를 꿈꾼다면 그 어떤 차도 아무리 비싼 집도 살 수 있는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긍정주의’는 우리 모두의 욕망을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극대화 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도취적 욕망은 미국 뿐 만이 아니라 급속한 경제발전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 16세기의 비극이 위정자들의 안일한 긍정주의에서 비롯되었다면 21세기의 절망은 자본주의·신비주의적 긍정주의의 극대화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마음의 노력을 통해 그 어느 것도 이루어준다는 마법에 가까운 긍정주의의 이데올로기 속에 개개인 자신의 욕망만을 꿈꾸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라는 단어는 대부분 좋은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찬사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연장자나 상사의 불합리한 명령을 군소리 않고 따르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으로 평가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만분자’로 취급받는 시대에 과연 ‘긍정적’이라는 단어야 말로 부정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러한 ‘불만분자’로 찍히는 날에는 주변 동료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뿐더러 해고 사유가 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캐딜락 사진과 함께 긍정의 주문을 외며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사람의 욕망이 현실에 불평하며 사회의 부조리함을 바꾸고자 하는 이 시대의 ‘삐딱이’들의 욕망보다 과연 진정한 의미의 ‘긍정주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긍정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이러한 긍정적 사고가 우리의 발등을 찍고 마침내 우리의 욕망을 병들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주의는 ‘암 치료의 현장’, ‘동기 유발 산업’, ‘교회’, ‘심리학’, ‘기업’ 그리고 우리의 ‘경제 시스템’에 까지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렸다고 말 한다. 암 환자들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긍정적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책망하여야 했다. 기업의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퇴출당하지 않도록 긍정적이 되어야 했고 퇴출당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긍정적이어야 했다. 동기 유발 코치·교회 목사·긍정 심리학자들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낙천적으로 기대하면 어떤 무언가가 기대하는 것을 반드시 도와준다고 설명해 왔다. 그리고 그 무언가란 신비한 우주의 어떤 힘, 창조주 혹은 심리학적인 어떤 요인 중 그 어느 하나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을 움직이는 방법은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현실에 순응하고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긍정적 사고를 통해 욕망하는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신용카드를 계속하여 긁었다. 그들의 물질적 욕망은 한 없이 인정되되 현실의 부정적인 모습을 언급하는 것은 물론 보는 것도 용인시 되지 않았다. 자기 주체적 겸손과 검약 그리고 절제의 미덕은 사라지고 어느덧 우리는 우리가 욕망하는 그 모든 대로 되리라는 환상에 스스로를 몰아넣었다. 이처럼 우리의 몸과 정신은 어느새 긍정주의라는 욕망의 전차에 이끌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어느 극한의 지점으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지난 50여 년 간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고도의 압축 성장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긍정하는 만큼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불평과 불만 보다는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하는 순응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의견보다는 집단적이고 단순하며 긍정에 찬 의사결정만을 주로 찬양해 왔다. 이와 동시에 한국 사회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물질적 욕망이 병적으로 커다란 사회가 되었다. 부자가 되면 행복하며 당신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 구조적 원인이 아닌 당신 개인의 문제라며 보다 근본적인 복지·환경에 대한 욕망은 철저히 무시 되곤 하였다. 이로서 노동자의 문제, 교육의 문제, 실업률의 문제는 개개인의 문제로 환원되었으며 그 ‘불안’한 틈 사이를 ‘물질적 욕망’이 더욱 견고히 비집고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상황 속에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은 심리적 소득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되었다. “잠들기 전 누워서 중국에서 구매자들이 오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다음 날에 그들이 물건을 사간다”며 어느 강연에서 모 식품회사 사장은 자신이 부자가 된 비법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가난하거든 남 탓, 현실 탓을 하지 말고 오직 자신 만을 탓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처럼 긍정주의는 ‘너도 나처럼 긍정적이면 할 수 있어’라는 성공 신화를 퍼트리며 빠르게 사회 전체에 퍼져나간다. 군중심리에 의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고자 그러한 판타지를 끊임없이 좇고 소비한다. 그러나 현실 속 나의 처지는 이러한 자기 최면만으로 쉽게 바뀔 리 없다. 결국 현실 속의 나와 꿈속의 나의 괴리감에서 오는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우리는 명품소비와 같은 과소비를 하게 된다. 긍정주의에서 기인한 불안감은 끊임없이 그 원인을 본인 내부에서 찾기 때문에 개인은 더욱 고립되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그리고 긍정주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의무가 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 칭했던 남미의 혁명가 체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키우자’ 라는 말을 남겼다. 리얼리스트란 객관적 현실을 바탕으로 일을 직시하고 처리하려는 사람을 뜻 한다. 체게바라의 말은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거대한 이상을 갖겠다는 태도 그리고 나아가 잘못된 현실을 넘어서겠다는 실체적 용기를 뜻한다 할 수 있겠다. 개인으로서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사는 것은 그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고 올바른 삶의 자세이다. 하지만 맹목적·병리적 긍정주의는 개인으로 하여금 현실성을 잃게 하고 주변 사회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 개인의 욕망을 눈멀고 병들게 하여 결국에는 긍정주의라는 욕망의 전차에 끌려 다니게 한다. 이러한 긍정주의는 역사 속에서 개인과 사회를 약화시키고 무너뜨렸다. 우리는 더 이상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끌려 다니며 우리의 삶을 낭비 할 수 없다. 그대 이 전차의 몸부림을 제어하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대 현실에 눈을 부릅뜨고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긴장을 늦추지 말라. 침묵을 깨트리고 ‘비판적 사고’라는 채찍을 높이 들어 기만적 ‘긍정주의’를 다스려라. 나의 주변에 대해 깨어있고 고민하고 개입하라. 가슴 뜨거운 리얼리스트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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