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용감했다 - 전통의 계승

  어느 날 갑자기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고 꽂혔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PMC 프로덕션의 박찬영 차장님을 만나 뵙게 되었었습니다. PMC프로덕션은 많은 분들께서 아시다시피 비언어 연극 난타로 잘 알려진 문화공연 회사입니다. 이런저런 계기로 만난분들과 이런 저런 즐거운 이야기 나누고 코엑스 아티움 뮤지컬 전용극장에서 ‘형제는 용감했다’도 볼 수 있었습니다.

 

 

 

  2008년에 처음으로 선보인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올해로 5번째 리바이벌 되었습니다. 극의 배경은 안동의 어느 근본 있는 이씨 가문의 초상집입니다. 양반 중의 양반 이씨 가문의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던 이석봉, 이주봉 두 아들은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안동에 내려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사이는 물론 우애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두 형제는 사사건건서로 싸우는 건 물론이고 집안 어르신들과도 대립각을 세웁니다. 그러다가 오로라라는 미모의 변호사가 나타나 아버지가 남기고 간 당첨된 ‘로또’를 계기로 두 형제는 힘을 합쳐 그 로또를 찾기 시작합니다.

 

 

  공연은 과거의 전통과 현재의 시대를 교차하며 오고 갑니다. 무대의 배경은 21세기 이지만 무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양복을 입은 두 형제를 제외하면 마치 100년 전 조선시대의 사람들과도 같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물론 입은 옷차림뿐만이 아니라 어투,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타임캡슐을 연 듯 시간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공자왈 맹자왈이 쏟아질 듯 합니다. 유교에서는 자고로 혈육의 형제를 골육지친(骨肉之親)이라 하였습니다. 군자삼락(君子三樂)의 첫 번째 낙은 부모가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고로 형제는 형우제공(兄友弟恭)이라 하여 형과 아우는 서로 우애를 다하여야 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극 속 형제는 만나자마자 대판 싸우며 주먹다짐을 합니다.

 

 

사실 여기에는 한반도의 가족 가족 마다 오래토록 뿌리 깊게 박혀왔던 한恨이 담겨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여아보다는 남아를 선호하여왔었고 차남보다는 장남을 선호하여왔습니다. 차남이 아무리 잘 되어도 장남이 잘 되지 못하면 그 집안은 기를 피지 못하였었습니다. 바로 제사를 장남이 지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안의 모든 역량은 주로 장남에게 집중되었고 대한민국의 장남들은 장남대로 부담을 평생 지닌 채 살아야 했고 차남은 차남대로 평생 형과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을 지닌 채 살아야 했습니다. 또한 여자형제들은 시집가면 어차피 남의 식구라 하여 그저 시집만 잘 보내면 된다 하여 여성들의 꿈보다는 시집살림에 필요한 지식들이나 잘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역사는 이러한 한恨을 수 천년 간 지닌채 살아온 것일까요? 이 것이 우리 역사가 가진 부끄러운 모습일까요? 연극의 마지막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거기에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부모님 그리고 형제간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보다 고생하는 아내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남편이 있고 장남이건 차남이건 마음 속으로는 똑같이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고 어릴 때는 힘으로 누를 때도 있었지만 마음 깊숙이 동생을 사랑하는 형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부모님 때문에 못했다 형제 때문에 못했다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 환경 탓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사람들은 부모님 그리고 형제들의 깊은 사랑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원망을 하게 된 건 아닌가 싶습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의 분신과도 같은 형 그리고 동생이 어찌 밉겠습니까. 우리의 전통 속에 있는 참다운 가족애는 지금도 우리의 피를 흐르고 있습니다.

 

 

포토존

 

 

많은 분들께서 좋아하는 배우 앞으로 쌀을 보내주셨더군요

 

 

공연 시작 전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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