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의 생일
- 일상
- 2012. 6. 15. 07:32
네덜란드에서 생일을 맞았다. 네덜란드에 오기 전에 귀국 날짜를 언제로 할지 고민을 꽤 했었다. 중간에 생일이 껴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생일을 맞이할지 네덜란드에서 생일을 맞이하고 일주일 늦게 귀국할지 그 당시에 꽤 고민했었다. 혹여나 타지에서 생일을 쓸쓸히 맞이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내가 네덜란드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혹여 가서 외롭게 지내는건 아닐까 여러 걱정을 하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여러차레 고민하다가 결국은 네덜란드에서 생일을 맞이하는걸로 결정 했었다. 그게 일년 전 일이라니 시간의 빠름을 느낀다.
일년 전의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오늘 그 어느해 못지 않은 행복한 생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시간으로 6월 14일이 되는 밤12시가 지나자 몇 분 지나지 않아 한국의 여자친구에게 전화로나마 생일 축하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노래를 불러준 여자친구가 참 고마웠다.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컴퓨터를 켜니 많은 지인들로부터 페이스북 축하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들부터 오늘 많나기 힘든 친구들까지 페이스북의 글 알림 숫자와 메시지는 늘 평소보다 배로 많았다. 지금은 만나기 힘든 한국의 친구들로부터나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도 이렇게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음이 감사했다.
소시지로 점심을 먹은 뒤 ibs research 사무실에 들렸다. 한국어 번역을 부탁받은게 있어서 사무실에 찾아갔는데 네덜란드 친구들이 준비한 깜짝 파티가 있었다. 사무실에 갔더니 사람들이 비여있어서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네덜란드어의 생일 축하노래와 함께 애플 파이를 친구들이 준비하였었다. 수 많은 네덜란드 친구들에게 둘러쌓여서 생일 축하를 받으니 다소 어쩔 줄 몰랐었다. 20여명의 ibs research 맴버 전원이 오지는 못하였었지만 조촐하게나마 깜작 선물을 준비해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타지에서 받는 케익인지라 그 감격함이 더하였다.
그 다음에는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데이빗의 집에 찾아갔다. 며칠 전 데이빗이 생일 선물로 중국음식을 해주고 싶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데이빗이 비프파스타라는 중국소스에 서양 파스타로 만든 퓨전식 중국요리를 해주었는데 맛있었다. 이미 케익을 먹은지라 배가 불렀지만 데이빗의 정성에 나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Cultural Economics 관련 수업을 들으며 몇 안되는 남자였던 데이빗과 나는 꽤 여러면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하였었다. 인도네시아 친구인 팔렌시아도 중간에 합류하여 인도네시아, 한국, 중국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데이빗은 선물로 중국 실내 장신구를 주었다.
데이빗 집에서 이미 배부르게 먹었지만 그 다음 약속인 EDS(Erasmus Debating Society) 바베큐 파티에 갔다. 집근처의 커다랍고 아름다운 호수 주변 클랄링언 에서 20여명의 디베이터들이 바베큐 파티를 가졌다. 디베이팅을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독일인 친구 지니는 나와 생일이 같았는데 오늘 케익을 수십개 만드느라 피곤하다고 했었다. 인도네시아 친구인 크리스챤이 오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었다. 몇 년 전 EDS 맴버들도 와서 처음 보는 얼굴들이 꽤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다이노소어(공룡)이라고는 부르곤 하였다. 맛있는 바베큐를 먹으며 EDS회장인 세트리와 여러 이야기 나누었다. 세트리는 세세하게 EDS맴버들을 잘 챙겨주는 인정 많은 회장이다. 마이클과 내가 프리스비를 가지며 놀자 점차 한 두명씩 사람들이 합류하여 나중에는 구역을 정하여 6:6 프리스비를 해가 질 때 까지 하였다(네덜란드에서는 여름 밤 10시는 되어야 해가 지평선 넘어로 넘어간다). [네덜란드 친구들과 놀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들과 친해지고자 한다면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소극적으로 앉아있는다고 해서 누가 말을 걸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적극성이 있어야 그들 또한 내가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의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단체로 놀았어도 뒷정리 할 때는 개인이 개인의 몫을 위주로 뒷정리 한다. 한국에서는 MT간 뒤 뒷정리 할 때는 모두가 다 함께 하는 반면 이 곳에서는 자기 몫의 정리가 끝나면 여자친구랑 키스를 하든 수다를 떨든 그저 자기 할일을 한다. 그래서 한국보다는 뒷정리가 항상 늦어지는 법이라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아는 친구를 잠시 마주쳤었다. 이제는 그저 잠시 길을 걷다가도 아는 친구들을 마주치고 안부를 묻는게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만큼 많은 이 곳에서 많은 인연을 만들었는데 이제 곧 이 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 마음 아프다. 그 간 만난 모든 소중한 사람들에게 많은 고마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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