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섹스 박물관 - 섹스는 쾌락과 사랑의 이중주


지난 해 한 학기 동안 프로이트(Sigmund Schlomo Freud)의 정신분석학에 관한 수업을 들었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대부분 성(性)의 영역에 깊숙이 뿌리 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이론을 통해 남자로서의 내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수업이라 재미있고 유익한 수업이었다. 프로이트의 가장 큰 업적은 '무의식'의 발견이다. 히스테리를 연구하던 프로이트는 인간 내면 깊숙이에 잡고 있는 어떠한 심리적 원인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걸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그는 인간의 의식이란 표면 아래에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세계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그는 인간의 정신질환은 물론 꿈, 실언, 잠꼬대와 같은 일상의 행위까지도 사실은 억압되어있던 무의식이 표출되는 방식임을 직시하게 된다. 그는 인간의 내면 구조를 성적충동(리비도)로 가득한 이드(그것)인간의 도덕적 관념체인 슈퍼에고(초자아) 그리고 그 사이를 조율하는 에고(자아)로 나누어 보았다. 그리고 그는 성적 충동(리비도)가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든 인간의 중요한 본능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다. 특히 그는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성(性)에 관해 겪은 일들이 인간의 무의식을 형성하는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남자아이가 어머니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고 아버지에게 거세 공포를 느끼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심지어 그는 문학작품 또한 작가의 성적 에너지의 분출로 보았는데 이처럼 프로이트의 이론은 이처럼 인간의 행동의 거의 대부분을 성적 충동에 의해 분석한다. 당시에는(지금도 물론) 수 많은 비난을 들어야 했던 그의 이론이었지만 이러한 폭로를 통해 인류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무언가를 보다 솔직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드러내놓기는 부끄럽고 너무도 껄끄럽지만 결코 스스로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성(性)적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어제는 암스테르담(Amsterdam) 중앙역 근처에 있는 성 박물관(Sex Museum)에 다녀왔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날이 으스스 하였지만 오늘도 네덜란드에 있는 새로운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 이름에서부터 우리는 이 박물관이 어떠한 박물관이지 알 수 있다. 마약, 성매매, 낙태, 안락사가 합법인 네덜란드의 이곳에서는 인간의 Sex에 대한 본능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굉장히 노골적인 작품들이 많은데 블로그에는 그런 수위 높은 사진은 올리지 않겠다. 입장료는 4유로이다. 안타깝게도 학생할인은 없다.





인간의 성적 쾌락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 하다. 박물관 내부에는 과거와 현재의 작품들을 적적히 잘 배치해놓았다. 박물관은 저 멀리 선사시대부터 그리스 시대는 물론 지금까지의 姓에 대한 쾌락을 보여준다. 인간의 신체 일부분  대한 집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중국, 일본 등 동양의 쾌락에 대해서도 전시되어 있다.



19,20세기에 그려진 여러 그림들. 성에 대해 지극히 보수적인 시대에 인간의 욕망은 그림을 통해 표출되었다.




사교계의 꽃이자 이중간첩이었던 팜므파탈의 대명사 마타하리. 그녀는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결국 프랑스 군인을 위험에 처하게 한 죄로 총살당한다. 



사진보다 그림이 더 적나라해 보인다. 박물관의 작품들은 인간의 사랑보다는 섹스 그 자체에 집중되어 있다. 행위의 목적보다 행위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시대의 성적 아이콘 마를린 먼로.



중세시대 십자군이 부인들에게 채웠던 정조대. 여자에게 채웠을 거면 남자에게도 채웠어야 했을 텐데...





프로이트가 말한 성적 욕망이 육체적 쾌락을 위한 성적 에너지인지 아니면 사랑을 갈망하는 에너지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적 에너지의 근본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살과 살이 맞닿는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쾌락을 위한 섹스든 사랑을 위한 섹스든 결국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의 그리움이 그러한 에너지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은 쾌락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진정한 기쁨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진실된 사랑을 하는 그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갈구하는 그 에너지의 원동력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랑과 사랑이 만나는 그 극한의 접점에서 빚어지는 편안함, 안도, 진실됨은 천국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홍등가 거리. 쇼윈도에서 여성이 지나가는 남성들을 유혹하다가 남성이 들어오면 커튼을 닫고 일을 한다. 비오는 낮임에도 불구하고 장사가 잘 되는지 많은 곳이 커튼이 쳐져있다. 저 곳에서 일하는 여인들은 돈에 대한 욕망이 성적 욕망을 넘어서는 거라 생각했다. 돈은 이처럼 무섭다.



인간의 질척하고 구불구불한 욕망을 보여주는 듯한 홍등가 뒷골목. 거리에는 호기심이 가득한 관광객과 욕망을 달래기 위해 거리의 여인을 찾아 해매는 남성들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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