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네판텐 미술관(Bonnefanten museum) -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의 색을 꼭 닮은 미술관
- 일상
- 2012. 6. 16. 11:20
네덜란드 남동부에 위치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에 다녀왔습니다. 륌브르흐주의 주도(州都)인 마스트리히트는 1992년에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유명한 도시 입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Treaty of Maastricht)을 통해 유럽은 시장 통합 단계의 EC(유럽 공동체)를 넘어선 경제*정치 통합단계의 EU(유럽연합)의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유럽의 공통화폐인 유로(Euro)화 사용이 체결되었으며 유로 국가간에 자유로운 통행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가며 쉥겐 조약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지금의 유럽 연합의 탄생을 알리는 유럽 역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조약이었습니다. 올해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된지 20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지금, 유럽 연합은 당초의 모토였던 평화와 번영(peace & prosperity) 중 평화는 지켜냈으나 번영의 지속에 실패한 듯 보입니다. 삐거덕 거리는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등의 남부유럽의 유로존 지속여부를 두고 많은 찬반이 오가고 있습니다. 유럽 연합이라는 거대한 꿈이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그 간에 걸어온 길을 해체할 지에 대한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마스트리히트는 네덜란드 지도에서 위에 보이시는 바대로 꼬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지도에서 꼬리처럼 툭 길게 튀어나온 마스트리히트는 서쪽으로는 벨기에, 동쪽으로는 독일에 싸여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영향으로 마스트리히트에서는 프랑스어, 독일어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으며 여러 나라의 문화와 음식이 섞여 네덜란드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국제적인 도시입니다.
오늘 제가 다녀온 박물관은 마스트리히트의 자랑거리 미술관 보네판텐 미술관(Bonnefanten museum)입니다. 한때는 공업지구였으나 새로이 재개발된 세라믹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시원스레 마스강을 마주 보고 있는 이 미술관은 과거와 현대의 작품들을 조화롭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일부 시기에 국한되지 않는 광범위한 시대 그리고 다양한 국가 출신의 작가들의 작품을 조화롭게 전시하며 그 다름 속에서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찾으려 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미술관 입니다. 또한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며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알도 로시(Aldo Rossi, 1931-1997)에 의해 1995년에 완공된 지금의 아름답고 세련된 건물로도 유명합니다.
알도 로시는 흔히 건축에서 신합리주의(Neo-rationalist)의 개척자로 알려져있습니다. 모더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실용성을 잃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이론적, 근원적 그리고 과거에 대한 회귀와 고찰 등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건축을 통해 도시의 과거의 모습을 담아내려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네판텐 미술관을 방문하였을 때는 영구 컬렉션인 Collection of Old Masters와 Modern&Contemporary art외에도 터키 수교 400주년을 맞이하여 준비한 터키 회화 전시회인 Different Impression Changing Traditions, 네덜란드의 가구 디자이너이자 미술 컬렉터였던 Martin Visser전 그리고 Maastricht에 연고가 있던 세 작가 Pierre Kemp, Piet Stockmans, Toon Tersas를 중심으로 한 Artists Commuters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러 올라가는 계단. 하나의 통로를 통해 다양한 시대, 다양한 국가의 작품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터키 수교 4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Different Impressions Changing Tradition' 전시회(2012년 8월 26일까지). 터키의 다양한 근현대 화가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다소 특이한 점은 일부 그림의 경우 원본이 아닌 프린트가 전시되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프린트로 그림을 접하게 되면 그 생생함은 덜 하지만 터키에 가지 않는 이상 보기 힘든 작품들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듯 합니다. 이날, 비록 프린트 일지라도 전시의 구도, 색감, 조명 등으로 원화 못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걸 느꼈습니다.
건물 입구에서부터 올라오는 빈통의 타워 사이로 난 홈을 통해 반대쪽의 그림을 본 모습. 미술관 안의 건축물의 구도를 이용한 다양한 재미있는 전시가 가능하다는걸 많이 느꼈습니다.
미술 복원실의 모습. 다른 미술관과는 달리 복원실의 모습을 일반 대중들에게도 공개하고 있습니다.
현재 복원 중인 작품들의 복원 전 모습.
정성스레 원본의 색감을 다시 입혀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여성분.
보네판텐 미술관에서는 네덜란드 화가들의 회화 작품을 또한 전시하고 있습니다. 매주 화,토요일에 열리는 블락 마케의 어류 판매 모습이나 과거 17세기 어시장의 모습이 사람들의 복장 등을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술작품은 과거의 모습을 엿보는 사진이며 또한 그 안에서 지금의 우리와의 공통점을 찾는 현미경이기도 합니다.
미술관 내부 모습
미로같은 통로들이 미술관 내부에서 미술작품을 찾아 돌아다니는 호기심을 높여 줍니다.
도자기에 색감을 입히는 터키 여인들의 모습
실린더 모양의 타워 내부 모습. 돔이 변형된 형태의 이 타워 내부는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의 교차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자체 또한 하나의 작품입니다.
Martin Visser가 디자인한 가구들의 모습.
Visser의 컬렉션 중 키스 해링의 작품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스강이 내다보이는 창 밖. 저 마스강은 로테르담을 거쳐 왔으리.
미니멀리즘.
미술관을 나와 다리 건너편으로 가던 중 찍은 사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가득한 마스트리히트의 거리들을 걷다 어느 술집 야외 테이블에 앉아 벨기에 흑맥주를 시켰었습니다. 네덜란드의 도시이지만 벨기에 맥주를 파는 이 술집에 앉아 주변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니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가 섞여 들려왔습니다. 저녁으로 시킨 오늘의 메뉴 또한 닭고기, 셀러드, 감자튀김이 섞여 나온 어느 나라 음식이라 딱히 말하기 힘든 음식이었습니다. 어쩌면 마스트리히트 만의 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딱히 어느 한 나라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문화가 접해지며 만든 하나의 섞임색과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색은 난잡합이 아닌 마스트리히트 만의 독특한 색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EU탄생의 발판이 되었던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이 곳에서 체결된 이유도 이러한 섞임과 다양함 속의 통일됨이 아니었을까요. 과거와 현대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작품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 보네판텐 미술관 또한 마스트리히트를 꼭 빼어 닮았다고 생각하며 흑맥주를 삼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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