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 인류의 진화의 방향은 어디일까
- 감상
- 2011. 8. 22. 15:28
(본 글은 아직 영화를 안보신 분들을 위하여 스포일러를 자제하고 쓴 글 입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TED의 주제들을 보면 Evoluton에 관한 강연들이 많다. ‘우리의 감정은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 ‘우리는 어느 생명체에서 왔는가’, ‘새로운 다위니즘’ 등 진화에 관한 여러 주제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의사이자 진화학자인 어느 노의사의 강의 내용이 인상적이었었다. 그는 인류의 진화의 방향을 크게 세가지로 말했는데 첫 번째는 ‘진화의 멈춤’이었고 두 번째는 ‘환경 변화에 따른 진화’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가 진화를 만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에서 말한 ‘진화의 멈춤’은 우리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자연적으로 진화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인류 중 어느 인종도 더 이상 고립될 수 있는 환경에 처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의술로 인한 생명 연장과 의료 시설의 확충으로 일부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종족이나 인간이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다윈의 ‘자연선택설(theory of natural selection)’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두 번째 ‘환경 변화에 따른 진화’의 요지는 자연적으로 인간이 진화를 할 수 있는 요지를 남겨 놓은 것인데 예를 들면 인류가 새로운 행성을 찾게 되어 인류 중 일부가 그 곳으로 이주할 경우 인류는 그 행성에서 살아남고자 자연스럽게 진화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우리가 진화를 만드는 경우’의 경우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우리 자손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우리가 원하는 진화를 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보다 강한 육체를 가질 수도 있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생명을 연장시키거나 우리의 기억능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이는 비단 자신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것뿐 만이 아니라 우리 자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아니면 자손의 출생단계부터 유전자를 변형시킬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진화’가 인류에게 필연적이며 인류 진화의 사이클을 획기적으로 줄여 인류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강의를 들으며 나는 다소 섬뜩했는데, 과연 인간이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과연 유전자 조작이 인류에게 행복만을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한 회의였기 때문이다.
올 해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영화는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이다. 엑스맨 시리즈의 과거로 돌아가는 이 영화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초능력을 지닌 ‘엑스맨’들과 일반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 간의 갈등과 불신 그리고 믿음에 대한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에서 인간은 돌연변이들의 존재를 깨닫고 그들을 두려워한다. 바로 그들은 자신과 ‘다름’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고 에너지 빔을 쏘고 사람의 생각을 읽는 돌연변이들을 보며 인간은 그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나아가 자신들을 제거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진다. 그리고 인간은 돌연변이들을 배신해서라도 돌연변이들을 제거하고자 한다. 돌연변이는 곧 ‘다름’을 낳고 이 ‘다름’은 기존 개체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만들어 낸다. 그 돌연변이가 ‘진화’ 이든 ‘퇴화’이든 유전적 돌연변이는 기존의 대다수 개체들에게 혐오감과 생존에 대한 공포를 불어 일으키기 때문이다. 진화한 개체와 기존 환경에 있던 개체 그리고 이 둘을 화합하려는 소수의 개체들이 자연선택설에서 도태되지 않고자 하는 노력과 투지가 영화 곳곳에서 화려한 그래픽과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펼쳐진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인간의 끝없는 진화에 대한 욕심과 그 과정에서 탄생한 진화한 침팬지의 투쟁의 이야기 이다. 영화 중 인간들은 알츠하이머를 극복하고자 영장류인 침팬지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다. 알츠하이머는 인간의 노화 과정 중에서 자연스럽게 찾아 올 수 있는 질병이자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뇌의 일부 기능이 점차 저하되기 시작하고 살아오면서 축적된 비정상적인 단백질들이 뇌 전체에 점차적으로 퍼짐으로써 판단∙인지∙지각 능력 등 전반적인 능력이 저하됨에 따라 육체의 소멸 전에 자신이 태어난 어린시절로 회귀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인류는 ‘큐어’를 개발함으로써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자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신들과 유사하나 유전적으로 ‘다름’을 가진 침팬지를 임상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다(일반적으로 인종 간에는 2~3%정도 정도의 유전적 차이가 있고 침팬지와는 5~10%정도 차이의 유전적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인간은 침팬지가 말도 못하고 지적으로 떨어지는 동물이라 하여 그들을 실험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진화를 위하여 침팬지를 마치 실험용품처럼 쉽게 폐기처분 될 수 있는 존재로 다룬다.
실험의 부작용으로 인간보다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가지게 된 ‘시저’는 스스로 침팬지들의 지도자 자리에 올라 인간을 향한 반란을 일으킨다. 침팬지들은 더 이상 인간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수 십 수백 만년 전에는 같은 영장류로서 같은 땅에서 동등한 대우를 하며 살았을 지도 모르는 인간과 침팬지는 다시 한번 진화의 우위를 놓고 싸우게 된다.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사피엔스’로 대표되는 인간의 지적 진화는 강인한 유인원의 육체에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닌 ‘시저’로 대표되는 침팬지의 반란 앞에 속수무책이다. 그리고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로 인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다.
TED의 어느 노의사의 말처럼 인류에게는 더 이상 자연적인 진화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넘어 스스로 진화를 만들어 나가는 지구 위의 유일한 종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진화의 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모두가 육체적으로 강해지고 똑똑해지는 진화의 혜택을 입을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엑스맨에서처럼 진화에 성공한 우월함을 가진 극소수의 개체가 나머지 개체를 도퇴시키려 할 수도 있고 진화의 혜택을 입는 사람은 결국에는 그러한 경제적 능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진화에 성공하지 못한 일부는 그들이 가진 ‘다름’ 때문에 차별당하고 소수로 전락할 수 있으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유전자’로 사람을 판단하는 새로운 잣대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흑인은 유전적으로 열등하다는 인종유전학을 뿌리치고 링컨이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한 게 고작 150여 년 전이다. 아직 우리 인류는 유전자적 진화가 아닌 인류의 정신적 진화에 보다 많은 발걸음을 내딛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Blind'(2007 )Beauty is seen rather when we closed our eyes. (0) | 2011.09.17 |
---|---|
한 편의 글이 모든 것을 말한다 (0) | 2011.09.09 |
사랑 (3) | 2011.06.05 |
5. 27 KU Bakery (1) | 2011.05.29 |
영화'Avatar'을 보고 (2) | 2011.05.29 |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