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Avatar'을 보고
- 감상
- 2011. 5. 29. 17:15
예전에 뇌 과학에 관련된 책을 읽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인간의 대뇌는 세 겹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대뇌 변연계'라는 곳에는 인간의 태고적 본능인 사냥에 대한 욕구가 잠들어 있다고 한다. 인간이 사냥이나 낚시를 통해 쾌감을 얻는 것은 변연계의 편도체가 원초적 경험을 통해 공명을 일으켜 동물적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 '아바타(Avatar)'에서의 나비(navi)족들의 자연에 가까운 수렵 활동과 모험은 3D로 표현된 그 생생한 이미지로 내 대뇌 변연계에 공명을 일으키는 효과를 일으켰다. 뇌 과학을 들먹이긴 하였지만 어쨌든 3D기술로 표현된 '판도라'라는 세계는 경이롭고 화려했으며 자극적이었다. 마치 내가 3D기술이라는 아바타 속에 들어가 '판도라'를 거닐다 온 느낌이랄까.
'뉴 월드'(2005)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건국 초기 포카혼타스(영화 속 포카혼타스인 레베카의 눈과 턱은 자연을 닮았다)와 존 스미스간의 사랑과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도 '아바타'의 제이크와 마찬가지로 스미스가 원주민들에게 잡히고 네이티리처럼 추장의 딸인 레베카(포카혼타스)에게 원주민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배우던 중 둘은 사랑에 빠진다. 이처럼 '아바타'와 '뉴 월드' 둘 다 시대와 종족이 다를 뿐이지 이주민들과 토착민들 사이의 서로에 대한 탐색과 일정 정도 교류를 시도한다는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영화 중반에 들어서게 되면 두 영화는 이제 현실과 판타지라는 서로의 길을 극명하게 간다. 스미스는 원주민들의 삶에 크게 공감하지만 결국 문명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고 총과 칼을 앞세운 이주민들 앞에 인디언들은 학살당하고 쫓겨나게 된다. '아바타'에서와 같은 원주민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있으나 역사의 승자는 이방인들에게 돌아가고 지금 America의 주인은 Indian이 아닌 American이다. 흔히 '수정주의 서부극'이라는 불분명한 단어로 설명되는 'Avatar'의 판타지적 요소는 역사 속에도 있었지만 역사의 결과는 냉정했다.
「세컨드 임팩트로 인구가 반으로 줄어든 인류의 복구 한창 일 무렵 인류에게는 또 하나의 위기가 닥친다. 그 것은 바로 사도의 출현! 인간들은 사도를 막기 위해 인간거대생체병기를 만들어 대항한다.」이것이 바로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주 된 줄거리이다. 'Avatar'를 보면서 영화 속 과학 기술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에반게리온'에서도 이와 비슷한 Technology가 등장한다. 그 것은 바로 생명체의 몸체를 복사하여 인간의 뇌 신경과 연결한 뒤 마치 자신의 Body처럼 제 2의 육체(Avatar)를 움직이는 기술이다. 에반게리온에서는 탑승자가 엔트리플러그라는 삽입체에 탑승하여 에반게리온에 접속하는 방식인데 이 일치율을 '싱크로율'라 한다. 즉 피삽입체가 삽입체를 거부하기도 하고 오히려 상승효과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Avatar'에서 나비족들이 이크란을 길들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 제이크가 이크란을 힘으로 누르고 서로의 시냅스를 연결함으로써 감정을 공유하는 장면은 신경 과학 Tecnnology의 종착역을 보여주는 듯 하다.
아바타라는 영화 한편에 수많은 자본이 오가고 평론이 오간다. 콘텐츠 하나가 가지는 파워가 영화 자체 보다 놀랍다. 영화는 판타지를 체현이 아닌 재현 시켜주지만 수많은 담론을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를 성장시킨다. 좀 더 많은 담론 만들어 내는 영화가 한국에서도 많이 많들어지길 바란다.
2010.01.26 20:5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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