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가치 -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백치(Idiot)에서 미쉬뀐 공작을 빌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말한 아름다움이란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선한 정신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윤리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무정형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 선한 정신에 의해 평정을 되찾을 때만 세상에 구원의 빛을 전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절망이 가득하던 러시아를 선한 정신의 아름다움으로 구원하고자 하려했던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0일 영국 가디언(Guardian)지에 알랭드보통(Alain de Botton)‘Should Art really be for its own sake alone?’이란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예술은 단순히 자신만을 위하여야만 하나? 정도가 될 듯 합니다. 알랭드 보통은 이제 미술관의 예술 작품들이 이 시대의 새로운 교회(New Church)가 되어가고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세속화로 사람들은 점차 교회에 가기를 꺼려하지만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들을 보며 숭고미와 존엄을 느끼는 것이지요. , 이 전에는 교회가 담당했던 인간의 선한 내적 욕구들(inner needs)를 이제는 예술작품들이 대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선한 절대자에게서 느끼는 존경과 숭배심을 눈에 보이고 이해하기 쉬운 예술작품을 통해 더욱 쉽게 느끼기에 그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서 현대 미술작품들은 이러한 미술작품의 내적 기능에 조소를 보냅니다. ‘모호함이라는 모호할 수 밖에 없는 주제를 가지고 기존의 미술작품들의 가치를 뒤덮어 버립니다. 우리는 현대 미술관의 정문을 나올 때 항상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존의 미술들이 가지고 있던 명확한 가치들(권선징악, 숭고, 종교적 교훈 등)에 비해서 현대 미술들은 너무도 그 개념이 주관적이고 불명확하며 쉽게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현대 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명확한 기존의 미술작품들은 배척되어야 할 대상으로까지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현대 미술 작품이란 이처럼 꼭 혼동과 불안감을 사람들에게 주어야 하는 것일까요? 왜 기존의 미술 작품들이 가지고 있던 교훈적 의미와 관객과 내적 소통을 하려던 시도들은 배척되고 유행이 지난 진부한 것으로만 받아들여져야 할까요. 본래 인간이 예술작품에 기대하던 것 가치들이란 바로 그 작품을 바라 보며 느끼는 내적 평온과 안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들이 지금까지도 축적이 되어왔기에 이제 예술이 현대인들에게는 기존의 복잡한 교리의 교회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안식처이자 휴식처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알랭드보통은 기존의 미술작품들의 가치가 우리의 삶에 커다란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저 또한 도스토예프스키가 말 한대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21세기에도 여전할 것 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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