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유랑극단 쇼팔로비치' - 무대안이든 밖이든 소중한 것은 꿈이 있다는 그것!

2010.03.20 23:11에 작성된 글입니다.


 연극과 현실을 구별 못하는 필립의 나무칼은 사형 직전의 세쿨라를 구합니다. 살기 위한 소피아의 달밤 속 연기는 사형집행인인 드로바초프의 영혼을 구하게 됩니다. 누구는 생명을 구했고 누구는 영혼을 구원했군요. 연극 마지막에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은 무대 다운 무대 한번 서보지 못하고 우지체 마을을 떠납니다. 하지만 세쿨라의 연인은 검은 상복을 벗고 하얀 드레스를 입게 되고 드로바초프는 수레국화 한 송이를 손에 쥔 채 배나무에 목을 매달게 됩니다.

 

 매일 총성이 울리고 드로바초프의 채찍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고 기나는 매일같이 피 묻은 옷을 빨아야하는 현실에 정말 연극 같은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나무칼로는 쇠칼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단 말인가?"라는 비몽사몽 필립의 마지막 외침과는 달리 나무칼로 대변되는 연극은 쇠칼이 해줄 수 없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배우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연극 속에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걸까요? 연극 속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무엇인가가 있는 걸까요?

 

 

 요즘 우리(특히 대학생들) 취업과 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듯합니다. 총성이 울리거나 채찍이 휘둘러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경기 불황과 취업난이라는 시대 상황은 우리를 마치 출전을 앞둔 병사의 심정으로 만듭니다. 늘 보이지 않는 전장 앞에서 우리는 긴장해야 하지요. 전장을 앞둔 병사 앞에 꿈과 희망은 사치요 헛된 바람입니다. 장군들은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죽음을 두려워 말라! 눈앞의 적을 무찔러라’ 냉혹한 현실 앞에서는 꿈을 꾸고 삶을 돌아보는 것보다 칼 한 번 더 잘 휘두르고 한 걸음 더 뛰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세르비아 절반이 초상집인데 저것들은 연극을 하겠다니. 시체더미 앞에서 예술을 한다고?’라고 외치던 마을 주민들의 말은 결코 비난의 말만은 아닙니다.

 

 ‘연극이 뭔지 아십니까? 당신은 지금 우제치시에 있지만 10미터만 더 가면 영국 영토가 펼쳐지죠. 10초 후에는 16세기가 시작되는 거에요’ 어쩌면 냉혹한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연극은 그저 정신적 유희일지도 모릅니다. 연극을 통해 영국을 보든 16세기를 보든 커튼이 내려간 무대는 결국 현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곰 가죽의 모자에서 곰의 으르렁 소리를 살려내고 모피코트에서 양의 울음을 살려내는 것은 연극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로 현실에 상상력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개입하는 순간입니다. 연극이 의도를 가지고 그랬던 그러지 않았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현실 너머에 있는 그 어떤 소중한 가치들은 인간의 꿈과 이상으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만으로 인간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고 이상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인생은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인간의 꿈을 꾸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요. 꿈과 현실, 무대 위와 무대 밖, 나무칼과 쇠칼이 양립된 것인지 하나인지는 개인 판단의 몫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무대 위든 무대 밖이든 우리는 끊임없이 꿈꾸며 이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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