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utilitarianism)- 벤담, 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에 대해 간략히 적어보겠습니다.

무척이나 퍽퍽한 글입니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는 어느 나라보다 이른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으로 해가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리던 영국의 19세기 중반에서 등장하였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토대로 발전한 영국에서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해법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공리주의 입니다. 공리주의란 모두의 행복을 극대화 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보는 윤리적 사상입니다. 이것은 결과주의(Consequentialism)의 한 형태로 결과주의란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행동의 최종적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결과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도덕성은 의무와 권리들에 의해 정해진다는 정언(Categorical)사상을 들 수 있겠습니다.). 공리주의 사상가들은 인간 행위의 윤리적 기초를 개인의 이익과 쾌락의 추구에 두고, 무엇이 이익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행복이라고 봅니다. 즉 가치 판단의 기준을 효용과 행복의 증진에 두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amount of good for the greatest number of people)’실현을 윤리적 행위의 목적으로 보았습니다.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19세기 영국의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와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 그리고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을 들 수 있습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 벤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군주의 지배 아래 두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지적하는 것도 오로지 이 두 군주에 달려 있다

 

벤담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행복(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피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행위가 윤리적으로 좋은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행위자와 행위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쾌락을 최대한으로 증가시키고 고통을 최소한으로 감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구성원들의 최대 효용(Utility)을 증가시킬 수 있는 행동이 사회적으로 도덕적인 행동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는 사회는 개인의 집합체이므로 개개인의 행복은 사회 전체의 행복과 연결되며, 더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벤담은 쾌락과 고통을 수량화 할 수 있고 측정 가능한 것으로 본 양적 공리주의자 입니다. 양적 공리주의자는 쾌락의 정도를 수량화 하려 하지만, 사실 개개인 마다의 쾌락의 정도는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인 쾌락은 수량화 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쾌락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 존 스튜어트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해하는 바보가 되기 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It is better to be a human being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fool satisfied).”

 

은 공리주의 초기의 벤담의 공리주의의 기본적인 의견에는 공감하나 양적 쾌락이 아닌 질적 쾌락을 주장한 것이 돋보입니다. 즉 그는 어떤 종류의 쾌락은 다른 종류의 쾌락 보다 더 바람직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는 두 가지 쾌락에 대해서, 그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 모든 사람 또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 선택된 것이 보다 바람직한 쾌락이다(Of two pleasures, if there be one to which all or most all who have experience of both give a decided preference, irrespective of any feeling of moral obligation to prefer it, then that is the more desirable pleasure)”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쾌락에도 높은 수준의 쾌락이 있고 낮은 수준의 쾌락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즉 쾌락은 양이 아닌 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행복만족을 구분 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품위와 고귀함은 동물의 쾌락 보다 높은 수준의 행복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밀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으로서 품위와 고귀함을 지향함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높은 수준의 행복(쾌락)은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그 진가를 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밀은 사람들이 이러한 품위와 고귀함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해서 교육을 많이 강조하였습니다



며칠 후면 대한민국 총선이 있습니다. 과연 훌륭한 정치인이란 이러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를 따르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칸트의 정언법적 도덕적 동기를 추구하는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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