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ting Down? 흔들리는 유럽 경제 속 네덜란드 문화예술계

흔들리는 유럽경제, 떨고 있는 네덜란드 문화·예술계



유럽경제위기와 네덜란드 예술의 위기

  몇몇 유럽 국가들의 위기가 유럽 전체로 번져 유로존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또한 유로존의 위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장기적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부채의 함정’ 앞에서 유럽 정치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이 무능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로존 위기는 경제(단일 통화정책)와 정치(국가별 재정정책)의 비대칭성이라는 시스템 실패의 산물인 셈입니다. 유로존이라는 시스템의 실패로 모두가 함께 가라앉을 위기에 처하였지만 각 나라들은 저마다의 살길을 먼저 모색할 뿐 함께 살길을 모색 하는 데는 늘 소극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유럽은행이 천문학적인 돈을 이번 위기의 근원지인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쏟아 부었지만 결과는 그리 썩 신통치 않았습니다. 이제는 유럽 공동 기금까지 조성하여 그 돈을 조달해야 할 지경입니다만 이 또한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사태는 점점 커져만 갔고 방만한 국가 재정 관리로 인한 국가 부도위기에 놓인 유럽의 몇 개의 국가들의 경제적 질병이 이제는 주변국으로 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비교적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정부 제정이 건전하다고 평가 받던 네덜란드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번 경제 위기 속에서 프랑스나 독일에 비하면 직접적 경제적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하며 국가부채 비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네덜란드도 지난 2010년 예산부터 정부 예산을 꾸준히 줄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타겟이 된 분야가 바로 ‘예술·문화’분야입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3년까지 7백만 유로의 예산을 줄이기로 하였는데 그 중 예술·문화 분야 지원금에서 2백만 유로를 삭감하기로 하였습니다. 정부는 이번 삭감 조치를 통해서 그동안 정부 지원금에 기댄 체 경제적 활동에 소극적이었던 문화·예술 분야에 경쟁의 동기를 부여하고 방만했던 제정적자를 해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갑작스럽고 급격한 지원금 감소로 인해 네덜란드의 문화·예술 생태계는 크나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특히 정부 지원금이 필수적인 공공 박물관, 발레 극단, 오케스트라 등에서는 단체의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암스테르담에서는 예술계의 대표들이 모여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는 영상을 제작하였고 각종 퍼모먼스를 통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는 예술분야에 있어서 막대한 지원금을 삭감을 하는 반면 로테르담에 제2의 축구장 건립등과 같은 소위 상업적 돈이 되는 분야에서는 오히려 다른 분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투자하여 여러 예술가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정책상 복지(문화·예술 분야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음)와 성장의 균형은 주로 '정부 예산 편성의 문제'와 관련됩니다. 정부는 건전 재정의 틀을 유지하면서 세입 예산과 세출 예산을 편성해야 합니다. 정부가 지나치게 ‘사회복지’에 돈을 투자하면 그리스·이탈리아와 같은 방만한 재정 악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정부가 지나치게 경제성장에 관련된 분야에만 예산을 편성할 경우 성장의 결과와 평등이 국민에게 고루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 할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네덜란드 정부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대대적으로 문화·예술분야 지원금을 삭감했습니다. 정부는 이번 삭감을 통해 문화·예술계에 생존본능을 살리고 경쟁의 요소가 살아나는 긍정적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한편 이탈리아의 열악한 상황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미들버그 아트센터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로렌초 베네데티(Lorenzo Benedetti)는 이탈리아가 그랬듯이 네덜란드에서도 문화예술계 인재들의 피난이 시작될 거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네덜란드 문화·예술의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과연 정부의 입장대로 긍정적 요소가 될까요? 아니면 로렌초의 말대로 네덜란드의 문화·예술계에 재앙이 시작 된 걸까요?



제정지원 삭감에 찬성하는 입장의 이야기

  문화·예술 분야 제정지원 삭감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 찬성이 찬성을 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네덜란드는 예술인들의 천국으로 불리어왔습니다.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네덜란드에서 예술을 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가적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예술인을 나약하고 경쟁력 없이 만든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대두하고 있습니다. 4년 전에 캐나다에서 네덜란드로 와서 댄서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티나(Christina)에 의하면 네덜란드에서는 정부에 예술인으로만 등록되어 있으면 일을 하지 않아도 예술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한 달에 100여 만 원에 가까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네덜란드의 어느 신부는 넉넉한 국가의 지원이 그것을 악용하는 예술가들을 무더기로 양산해냈고, 그러한 지원금에 기댄 예술가들에게 목표란 어떤 종류의 금기나 규칙이든 무너뜨리고 공격하는 것밖엔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술지원금은 소위 ‘무위도식’하는 방만한 예술가들을 부추겨 온 것이 사실이고 예술가들 사이에서 창의적이고 경쟁적인 동기를 상실케 하는 원인으로 지목받아왔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이유로 예술가들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예술분야에 있어서 제정삭감의 칼을 들었습니다.

  예술가의 지원 받을 자격을 가리는 문제는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복지 지원이 잘 되어 있는 나라를 비롯하여 어느 나라나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예술가’가 되는 면허도 존재하지 않으며 실력을 검증하는 시스템도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결국 예술 작품을 만드는 사람, 그것을 전시하는 사람은 ‘예술가’로 분류되어 정부의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허점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번 경제위기로 인한 제정삭감에 있어서 그동안 계속되어온 비효율적인 지원에 대한 단호한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동안 정부가 소극적인 예술인의 숫자를 키우는 데에 크게 공헌을 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와 정치적 행정으로 문화행사를 급조해 예산낭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세금을 떼어다가 일부 문화예술 감상자들을 보조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이제 네덜란드 정부는 수년에 걸쳐서 문화·예술 분야 제정지원 삭감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예술가들은 기업가들 못지않게 자신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예술시장에서 예술기업가 정신을 향상 시킬 것이라 주장합니다.


제정지원 삭감에 반대하는 입장의 이야기

  그 동안 예술과 문화에 대한 네덜란드 정부의 풍족한 지원은 네덜란드를 세계적인 예술인들의 산출지가 되도록 해왔습니다.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 속에 네덜란드는 둠바, 렘 쿨하스, 드룩, 토털 아이덴티티 등과 같은 유명한 디자이너, 디자인 회사들 뿐 만 아니라 수많은 세계적 예술가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정부 및 기관의 예술 지원 형태로는 첫 번째로 정부의 직접 지원금을 주는 형태를 꼽을 수 있으며 BIS(Basicinfrastructre)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습니다. 처음 4 년간 예술인이 자리를 잡을 때가지 정부가 지원금을 제공해주는 이 방식은 수많은 창의적·혁신적 예술가들에게 초기 정착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간접 지원금을 꼽을 수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는 부가가치세(Value Added Tax, VAT)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부가가치세에 문화·예술분야를 포함시켜놓아서 제정을 충당해왔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비정부기관으로부터의 펀딩을 받는 방법으로 개인은행이나 여러 기관들을 통해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문화·예술 분야 제정 삭감에 대해 유럽의 경제 위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것을 제정 삭감 반대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삭감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고 급격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정치인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화 예술 분야의 중요성에 대해서 둔감합니다. 그들에게는 근처 미술관이 없어지는 것보다 축구경기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성향은 애써 예술분야에 관심을 멀리하던 정치인들에 의해 선동되고 있습니다. 예술분야에서 삭감된 지원금을 가지고 축구장을 지으려는 로테르담의 정책결정자들의 의지를 보아도 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지 경제적 수치만을 통해서 예술의 가치들을 판단하고 있는 실태가 문제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예술기관 및 겔러리에서 엄청난 숫자의 ‘예술가’가 배출되고 있으며 엄청난 양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가치가 있고 앞으로 살아남을지는 전문가들도 판별해내기 어렵습니다.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은 누구나 예술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 가질 수 있지만 어떤 작품이 주목을 받을지는 예상하기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령 뛰어난 안목을 갖추었다고 해도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는 없습니다. 현재 예술계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팝아트가 등장하던 당시에는 시기에는 그것이 천박하다고 외면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예술에 무한한 열정을 가지고 있던 구겐하임과 같은 수많은 이들의 지원을 통해 그 작품 활동이 계속 될 수 있었고 지금의 팝아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술은 태생적으로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가난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 때문에 정부의 지원금은 필수적입니다. 정부의 지원금 삭감에 대해 많은 예술가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들의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기 힘들어 질 것입니다. 이처럼 예술분야 지원 삭감에 반대하는 이들은 궁극적으로 예술분야에 있어서 지원의 삭감은 장기적 시각에 있어서 문화·예술 분야를 수축시키고 왜소하게 만들 것이라 주장합니다.


시사점

  이제껏 예술인들의 천국으로 불리던 네덜란드에서 Melting Down 즉, 녹아내리는 빙하에서의 예술가들의 탈출이 시작될 지도 모릅니다. 과연 네덜란드는 앞으로도 세계 예술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지원금 삭감이 네덜란드 예술계의 황폐화를 불러올 까요 아니면 새로운 동기부여가 될까요? 저와 같은 문화경제학(Cultural Economics)수업을 듣고 있는 Dorothy는 De Kiss Moves라는 순수 예술 공연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정부의 지원금 삭감은 예술계의 수축을 필연적으로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녀의 극단은 90%의 표가 매진될 정도로 인기이지만 정작 표 판매를 통해 얻는 수입은 전체 수익의 50% 밖에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나머지 부분은 정부가 지원해 주어왔기에 그녀의 극단은 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정부의 지원금 삭감 방안으로 인해 극단 운영에 관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되었던 크리스티나의 말대로 정부의 방만한 지원은 무위도식하는 예술가들을 먹여 살리는 데 사용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리고 예술가들 사이의 경쟁의식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속에서는 불필요한 제정삭감은 필연적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쪽에서는 많은 예술가들이 순수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반대쪽에서는 제정 삭감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문화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네덜란드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은 이번 경제위기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어 2012년 예산안 발표에 있어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렸으며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는 전년대비 예산이 5.7%가 올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총 예산안 중 문화예술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며 이는 선진국들의 2~3%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불황 속에 점차 문화예술계에도 민영화 및 지원 삭감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문화·예술 분야를 예산낭비를 하는 분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운영방침을 먼저 내세울 경우 돈이 되지 않는 종류의 예술에는 얼마나 관대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대한민국은 예술계 내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효율성을 예술계 밖의 그것(시장 논리)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 과제일 것입니다. 예술분야에 대한 꾸준하고도 실리적인 지원은 언제나 필수적이며 그들 스스로 이익창출구조를 갖추어 나가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일 것입니다. 즉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양자 간의 균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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