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났다?
- 일상
- 2012. 1. 12. 07:21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났다?
얼마 전 한 친구로부터 이메일 한통을 받았다. 평소에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인 터라 안부 메일이려니 했는데 자못 진지한 어조로 시작된 메일의 주된 본론은 나의 블로그에 개제된 본인 관련된 내용 대다수를 삭제해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전 나의 블로그 주소를 그에게 알려주었는데 구글 번역기를 통해서 어느 정도 블로그의 내용들을 본 듯 했다. 그는 본인 자신의 이야기가 인터넷에 실리는 것을 원치 않는 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나의 관점에서는 블로그 자체에 그다지 그 친구의 개인적 신상이 자세히 적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여러 글들을 다 합쳐도 그 친구의 이름, 사는 도시와 나이 정도의 간단한 정보만이 적혀 있었으며 주로 그 친구와 다닌 여행 관련 내용들 뿐 이었다. 또한 나는 한국어로 한국인이 주로 사용하는 블로그 플랫폼에 글을 게재하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대한민국 반대편에 사는 어느 네덜란드 할아버지의 자세한 정보를 캐낼 수도 없고 혹여 연락 및 방문도 할 수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구글 번역기가 번역을 잘 못 하는 부분이 있어서 오역된 부분들이 오해를 산 것 아닌지 추측했다. 나는 이처럼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블로그 내용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을 것이라고 오히려 그를 설득하는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답장은 더욱 단호하게 돌아왔다. 그는 정확히 어디어디를 지적하며 어떻게 고쳐달라고 요구를 했고 만일 본인에 대해 글을 쓸 경우에는 먼저 영문판으로 글을 작성해서 사전에 검사를 받고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사진도 포함해서다. 나는 당혹감과 함께 약간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는 분명 함께 여행을 다녔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며 그는 내게 네덜란드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니 그와 함께한 여행과 관련한 블로그 글을 작성할 때 어찌 그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고 글을 작성할 수 있겠으며 유명인도 아닌 그가 그 정도 사생활이 노출되는 게 무슨 큰 대수라고 그리 민감하게 구는지 그를 약간은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는 그에게 나의 글을 검열 받아야 된다는 생각에 나는 까다로워진 글쓰기와 함께 투자해야 할 시간의 증가로 약간의 짜증도 섞였다. 나는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하나 하루 이틀 정도 고민하다 그가 원하는 데로 글들을 수정하였다. 어느 글은 발행을 취소하기도 하였고 어느 글은 대폭 내용이 줄어들기도 하였다. 글을 수정한 후 그에게 글이 수정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밝았다. 그는 글을 수정하느라 고생하였을 내게 미안함을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보통 친구와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내가 먼저 한 발 물러서고는 하지.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물러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어. 나는 나의 사생활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지. 나는 내가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생활이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아. 심지어 이 무명의 늙은이에게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저 멀리 한국 사람들에게라도 말이야. 나는 이 도시에 살다 어느 날 죽을 것이지만 인터넷의 글은 죽지 않을 거야. 난 그것을 원치 않아.” 나는 순간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했다. 내가 얼마나 인터넷 상에서의 나의 프라이버시 혹은 남의 프라이버시에 대해서 무감각 해져있었는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였다. 1990년대부터 인터넷의 쓰임이 늘어나면서 개인들의 프라이버시(사생활) 영역이 뿌리부터 위협받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또한 검색엔진의 성능이 갈수록 향상되다보니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개인의 정보는 더욱 쉽게 찾아진다. 거기다 최근에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개인의 신상정보는 순식간에 인터넷 곳곳으로 퍼뜨려진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등을 통해 노출된 개인정보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공유할 수 있어 완전삭제가 불가능한 특성마저 가지고 있다. 요즘은 거기에다가 위치정보까지 추가되었다. 내가 페이스북을 사용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을 때 이제는 내가 어디에서 사용하고 있는지를 웹 개발자 혹은 나의 지인들이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소개팅에 나갔었다. 상대방 남자는 선물을 준비해왔는데 평소 지인이 관심이 많은 작가의 책 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취향이 비슷한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해서 몹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자가 본인의 페이스북, 싸이월드 등을 통해서 미리 그녀의 취미와 개인정보를 파악한 후 준비한 선물이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만나기도 전에 자신의 신상이 노출된 듯 하여 기분이 나빴었다고 했다.
이처럼 이제는 마크 주커버그가 말한 대로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이 난 듯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의 정교화에 앞서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개인들이 스스로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노출에 거리낌 없어 진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혹은 트위터에 접속하면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가 있다. 어느 음식점에서 무얼 먹었으며 지금 나의 기분은 어떻다 등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을 SNS에 올리기에 바빠졌다. 페이스북 리서치회사인 제펜 페이스북 인사이트에 따르면 페이스북에 항상 로그인해있는 이용자가 전체 이용자 중 17.2%에 달하며 하루에도 수차례 접속한다는 사람은 41.1%에 달하며 평균 이용시간은 55분이다. 또한 페이스북 프로필 공개 수준에서도 50% 이상 혹은 그에 비슷한 수준으로 이름, 거주지, 출신학교, 지역, 생년월일, 근무처, 혈액형, 연애 유무 등을 공개화하고 있었다. 특히 페이스북의 주된 이용기능은 근황업데이트였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리고자 페이스북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정보가 노출되면 프로파일링 위협이 있는데 이용자들은 왜 자신들의 정보를 노출할까? 그 첫 번째 이유로는 인터넷 서비스의 속성 상 자신을 더욱 많이 노출 할수록 인터넷 세계에서 자신의 입지가 단단해지며 더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정보교환의 호혜적 특성 때문이다. 페이스북 혹은 블로그의 경우 개인의 신상정보를 어느 정도 이상 공개해야지 더욱 많은 방문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주목(attention)이 곧 자산이자 명성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사람들이 자신의 불안 혹은 외로움의 해소를 위해 자신을 인터넷에 노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주된 사용 층인 2·30대 층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안한 위치에 속해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올바르고 주목 받을 수 있는 일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그 불안 혹은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자신이 무얼 먹고 무얼 하고 있으며 누굴 만나고 있는지 외부 사람들에게 알리고 검증받고자 한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나의 인터넷 및 SNS 습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의 일기장 대신 인터넷이란 커다란 광장에서 나의 일상을 외치고만 있지는 않았는지, 비록 공개된 것이라 하나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의 사적인 생활을 엿보았던 건 아닌지. 지금 당장 모든 사람들에게 인터넷에 자신의 정보를 그만 올리고 SNS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다. 어쩌면 주커버그의 말 대로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사생활과 정보에 대해서는 본인 스스로 책임감과 존중감을 가지고 그것을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주목받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고 보호 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터넷 공간 안에서 프라이버시를 숨기려는 동시에 또한 노출하려는 역설을 가지고 있는 역설 적 존재 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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