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2008.01.23 18:08에 작성된 글입니다.

조용히 단정하게 앉아 검정 먹을 빨아들인 붓을 하얀 화선지에 가만 가만히 눌러 움직이는 차분한 기쁨. 오로지 검정과 흰색의 세상일 뿐 번잡하지 않다. 한자 한자 써가며 한자 한자 어디가 잘 못 써지고 어디가 잘 써졌는지 세심히 살펴본다. 간혹 글씨가 조금 잘 써졌다하여 남에게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화선지에 배인 잔잔한 묵 냄새가 좋다. 그저 내 마음도 번잡하지 않게 하기에 좋다. 같은 글씨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연습한다. 필체를 내 손에 배게 하기 위해서다. 메마른 화선지에 검정 묵이 스며들듯 필체를 체득하고자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히 연습한다. 그리고 균형감각.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적당한 곳에 획을 써넣는 것. 붓을 대기 전에 생각하고 댄 후에도 균형을 생각하며 써간다. 극단점이 아닌 가장 적당한 곳 그곳은 중용.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움직이는 시계바늘과 내가 글을 쓰는 것을 빼고는 세상이 정지해버린 듯 하다. 허공에 떠있는 묵향만이 이 공간을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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