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 그의 변명.

2006.12.13 18:30에 작성된 글입니다.

하이젠베르크 [Heisenberg, Werner Karl, 1901.12.5~1976.2.1]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 뽑히는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로 너무나도 유명한 과학자이다. 그는 1923년의 나이에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26세의 나이로 라이프치히 대학 정교수가 될 만큼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이 젊은 천재 물리학자는 1925년 양자역학의 토대를 세우는 행렬역학을 만들고, 이어서 1927년에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양자역학에 도입한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결정론적인 추론은 불가능하고, 확률론적인 추측밖에 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현대 양자역학의 기초를 다졌다. 이 공로로 하이젠베르크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 하이젠베르크와 자주 같이 거론되는 동시대의 과학자가 있다. 바로 핵폭탄 개발에 성공한 오펜하이머이다.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 참여 과학자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 때문에 비판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맨해튼프로젝트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전쟁이 끝난 뒤 트루먼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내 손에는 피가 묻어있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많은 유태계 물리학자들이 나치 치하의 독일을 떠날 때 순수독일혈통의 하이젠베르크는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독일에 남아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물리연구소 소장으로 히틀러의 우라늄 계획을 이끌었다. 하지만 미국이 1945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 경쟁은 끝이 났다. 
비록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졌지만 독일 과학자들 역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핵무기 개발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에 협력하려 했다는 '불순한 의도'에 대해 비판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이 미국보다 먼저 우라늄의 핵분열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져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불순한 의도에 대한 해명'과 '무너진 자존심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절묘한 증언을 했다. "자신이 조국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방해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포함한 양심적인 독일의 과학자들이 핵무기를 '안' 만든 것이라는 얘기다. 
정말 하이젠베르크는 핵무기를 '못' 만든 것이 아니라 '안' 만든 것이었을까.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성공한 원자로를 통한 플루토늄239 생산 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에 대해 "자신은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폭탄이 아니라 발전소를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중수를 감속재로 사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젠베르크의 그럴듯한 변명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것이었지만, 진위를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1944년 미국 그로브즈 장군은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알소스(Alsos)'란 암호명의 특공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1945년 4월 경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독일의 우라늄클럽 과학자 10명을 체포해 영국 캠브리지 근처 팜홀이라는 시골에 6개월이 넘게 억류했다. 
이곳에서 이들의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비밀리에 녹음됐는데, 50년간 비밀로 분류됐던 이 자료가 90년대 후반 공개됐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 후 이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보면 하이젠베르크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려 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독일의 과학자들이 적어도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이론적 실수를 범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안 만들었다'는 그들의 주장보다는, '만들려고 했어도 못 만들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더 적절하다.

나는 2차대전 당시 핵 개발의 상황이 '불확정성 원리'와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측정하려는 행동이 측정되는 결과값에 영향을 미쳐 다른 결과를 낳듯이 먼저 시작된 독일의 핵 개발은 미국의 핵 개발계획에 영향을 미쳐 독일이 아닌 미국이 핵 폭탄을 먼저 개발 함으로써 2차대전은 끝이났다. 하이젠베르크는 그 뒤로도 독일의 과학발전에 큰 역학을 하였다. 어쨌든 하이젠베르크가 의도적으로 핵 개발을 방해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은 듯 하다. 하지만 그는 오펜하이머처럼 핵 개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책감에 사로잡혀 불후한 여생을 보내지 않아도 됐으니 오히려 핵 개발의 실패는 그에게 변명거리를 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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