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레판토 해전' - 전쟁과 정치 그리고 인간

2008.02.14 12:17에 작성된 글입니다.

'레판토 해전' - 전쟁 3부작 3              시오노 나나미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 한 이는 누구였던가. 마오 쩌둥이었던가, 클라우제비츠였던가. 만일 이 주장이 맞다면 나 역시 피를 흘리는 정치를 그려내기 전에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을 묘사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레판토 해전은 제일 먼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에서 출발해, '피를 흘리는 정치'로, 다시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으로 끝난 역사상의 중요한 한 사건이었다. -레판토 해전 中

 

 

 

 

 '피를 흘리는 정치',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 결국 전쟁과 정치의 차이점은 단 하나, 피를 흘리는 유무 일지도 모른다. 허나 전쟁이건 정치이건 그 과정에서 피 말리는 전투를 하며 진땀 빼는 것은 오로지 인간일 뿐이다. 어쨌든 다 인간사의 이야기다. 인간이 저지르는 살육이고 계략이며 실수와 성공의 번복이 이어진다. 전쟁이건 정치이건 거기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어려 있는 것이다. 왕은 물론 신하, 장군 그리고 역사책에는 등장하지 않는 전장의 말단 전투참가인원들까지의 온갖 애환이 섞이게 되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전쟁과 정치에서 보이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지중해에서 벌어졌던 중요한 세 가지 전투를 중심으로 엮어서 보여준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 섬 공방전, 레판토 해전 이렇게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다툰 최후의 세 전투를 통해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과 동시에 그 시대,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의 결코 슬프지 만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는 전쟁 3부작에서 전투와 영웅 중심의 일방적 역사구조를 끌어다 쓰지 않는다.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써내려 가는 인물들은 전쟁과 정치가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그 전투의 장면에 실재로 참가했던 다양한 사람들이다. 의사, 상인, 기사, 의원, 해적, 왕, 대사, 장군 등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지닌 다양한 군상들이 전투의 실재 이야기를 말해준다. 이 모두가 자기 자신의 시대에 최선을 다해 살아갔던 사람들이다. 흔히 우리가 뭉뚱그려 말하는 무슨 무슨 전투에는 그 시대와 장소를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가 묻어있는 것이다. 단 한나절 만에 끝나버린 레판토 해전 또한 정치와 전쟁의 실타래 속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묻어있다.

 

 

 1570년 투르크의 키프로스 침략으로 기독교 세계는 바짝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개신교와 싸우던 반개혁혁명 국가들이 오랜만에 단결을 하게 한다. 이리하여 베네치아, 에스파냐, 로마 교황청이 주도하여 기독교 연합 함대가 결성된다. 하지만 어렵게 결성된 연합함대는 처음부터 말썽이 많았다. 네덜란드, 독일 등 종교 개혁 혁명이 몰아치고 있는 국가에서는 당연히 애초부터 연합 세력에 가담하지 않았을 뿐더러 에스파냐와 앙숙인 프랑스는 오히려 투르크와 친선을 택하고 있었고 영국은 엘리자베스1세를 모욕하던 로마 교황과의 앙금문제로 연합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기독교 연합 결성국 내에서도 에스파냐는 베네치아를 도와 키프로스를 탈환하기보다는 연합군이 북아프리카를 공격하기를 원해 계속하여 출항을 미루었었다. 베네치아의 입장에서는 투르크, 기독교 연합과의 정치 힘겨루기를 하느라 대사관들이 진을 빼야만 했다. 이 정치적 싸움은 1571년에 다시 모인 기독교 연합 함대의 레판토 해전으로 옮겨 간다. 이 피 흘리는 정치 앞에서 단결된 모습을 보여준 기독교 연합은 투르크 해군을 크게 이긴다. 서구 연합 세력이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기치를 걸고 출정한 십자군의 마지막 승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은 계속되었다. 레판토 해전의 주된 이야기는 이러하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여기에 전투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집어 넣는다. 아들을 둔 어느 미망인 플로라를 사랑하게 된 바르바리고, 공화국을 위해 온 몸을 바쳐 헌신하는 콘스탄티노플 주재 베네치아 대사 바르바로, 불같은 성격의 베니에르, 연합 함대의 총사령관임을 자각한 에스파냐의 왕자 돈 후안 등 책은 그 역사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리아스와 같은 문명 간의 대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전투를 보여주고자 했던 시오노 나나미는 전쟁3부작에 그 꿈을 담았다. 에메랄드 빛 지중해를 배경으로 펼쳐진 레판토 해전은 이 전쟁 3부작의 마지막이자 이후의 주 된 전투가 대서양으로 옮겨가는 역사에서 마지막 지중해를 둘러싼 커다란 전투 인 것이다. 칼이 부딪히는 백병전 위주의 해전으로서는 마지막에 가까운 이 전투 이후 베네치아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는다. 허나 책 속의 베네치아인들은 물론이고 그 밖의 여러 나라의 군상들의 이야기는 역사란 개개인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세삼 다시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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