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로도스 섬 공방전'을 읽고 - 준비와 타협

2008.02.09 13:17에 작성된 글입니다.

 
로도스 섬 공방전 - 전쟁 3부작 2 시오노 나나미

 

 

사려 깊은 무장은 부하 장병들을 적과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몰아넣는 반면, 적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싸우지 않게 하는 계책을 강구한다. -로도스 섬 공방전 中

 

 

몰락하는 계급은 언제나 새로 대두되는 계급과 전쟁을 치르고서야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다. -로도스 섬 공방전 中

 

 

 

 피할 수 없는 전투를 치러야 한다면 아군의 사기를 가장 고취시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전투에 대해 철저히 준비를 하는 것 일 거다. 즉 철저한 준비 작업으로서 전투 구성원들을 단결시키고 자신감을 고취시키며 무엇보다도 그 단결과 자신감에 의해 결국 그 전투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 이다. 유럽 전선의 최전방인 로도스 섬을 수성을 해야 했던 성 요한 기사단원들은 투르크와의 전투를 피할 수 없었다. 투르크 영지와의 거리는 바다를 사이에 두었다 하지만 그 거리는 고작 수km. 하지만 유럽 최전선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키던 이들은 정작 주변 기독교 국가들로부터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려웠을 뿐 더러 그리스도의 전사라는 이들의 사명은 투르크와의 친선을 단호히 거절하게 하였다. 언젠가는 쳐들어 올 적을 맞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적의 공격에 대한 준비였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유럽에 등장한 새로운 공성전법인 대포를 사용한 성 공격은 로도스 섬의 성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다. 수직으로 높고 폭이 좁았던 기존의 성들과는 달리 로도스 섬에는 성의 높이가 낮은 대신 지하 밑으로 단단히 들어갔으며 밑 부분이 완만하고 성의 폭이 넓었다. 그리고 기존의 탑의 개념대신 성벽 밖으로 돌출된 성채를 지음으로써 성에 공격과 방어의 기능에 유연성을 두었다. 이러한 로도스 섬의 변화를 주도했던 사람은 로도스가 함락되기 수십년 전의 선대 기사단장인 파브리지오 델 카레토. 상시 전시체제에 살아가는 성 요한 기사단은 이러한 끊임없는 수성 준비로 인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전사라는 가슴 넘치는 자부심으로 스스로 피할 수 없는 전투에 임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사명에 가까운 준비가 가능했던 것은 아직 기사들의 자부심이 유럽의 끄트머리의 작은 섬에 강력히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1522년 당시 서서히 몰락해가고 있던 기사계급의 막바지 전투가 이제 로도스 섬에서 시작하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드시 어느 지역을 점령해야만 하는 군주라면 자신이 그 지역을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만 있다면 굳이 마지막까지 싸움으로서 그 지역 얻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와 협상이다. 적의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최대한 꺾고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패배 인정을 유도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10만 대군 정도는 가볍게 출전시킬 힘을 가졌던 투르크의 쉴레이만 1세는 로도스를 최대한 대화와 협상으로 얻어내고자 하였다. 그에게 로도스는 반드시 점령을 해야 할 곳이었으면서도 점령하기가 까다로운 지역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자발적인 패배 인정을 받아내기가 어려움을 알자 철저한 계획을 통해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수개월 간 끊임없이 불을 내뿜는 대포, 수십 개의 지뢰 폭파, 12만 대군의 총공격 등은 고작 6천도 채 안 되는 병력으로 전투에 임해야 했던 성 요한 기사단들을 지치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결국 전쟁은 양측의 협상을 통해 끝을 맺고 쉴레이만 1세는 그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여 섬을 떠나게 하였고 자신은 당당히 로도스에 입성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투르크제국의 정원에 웅크리고 있던 작고 사나운 '그리스도의 뱀'을 둥지 채 뜯어버렸다.

 

 로도스 함락 당시의 유럽 대륙에서는 국가 간의 재개편이 일어나고 있었다. 베네치아, 제네바와 같은 군소도시들의 전성시대가 가고 프랑스, 에스파냐와 같은 거대한 영토를 기반으로 왕정 중심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 국가 중심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소수의 기사 위주의 병력들이 전투에서 빛을 발하던 시대는 가고 강력한 석궁부대, 대규모의 보병과 대포 위주의 공성전이 도래하는 시대였다. 더 이상 은빛의 광채가 빛나는 갑옷 기사단은 전투의 주력부대가 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투 개편은 중소 국가들의 자립적 존망을 위태롭게 하였고 중소국가들은 거대한 국가 속에 편입되어갔다. 왕은 더 이상 영주들 중의 영주가 아닌 강력한 권력을 가진 영토의 대변자, 그 지배자가 되었다. 결국 지역에서 사실상 군주 노릇을 하던 수많은 귀족가문들은 거대한 국가 속에 재편되어 갔다. 중세 유럽을 지탱하고 있던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몰락해가던 지방 영주들은 로도스를 도울 여력이 없었고 로도스 섬에서 성 요한 기사단은 몰락해가는 모든 귀족세력들을 대변하듯 기사로서의 긍지를 가질 수 있었던 전투로서는 막바지라 할 수 있는 로도스 섬 공방전에 임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출간된 것은 로도스 섬 함락 이후 대략 80여년이 지난 1605년이니 그들을 살아있는 돈키호테의 선조라고 할 수 있으려나.

 

 장밋빛 섬 로도스를 둘러싼 공격자와 방어자, 일어서려는 자와 몰락하는 자들의 대립은 1522년에 끝을 맺었으나 이러한 대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몰락하는 계급은 새로 대두되는 세력과의 전쟁을 치루고 사라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몰락하는 계급으로서 그 몰락을 최대한 지연시키거나 기사회생으로 살아남는 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철저한 준비로 자신들을 무장시키고 대두되는 세력과는 가능한 한 싸우지 않는 계책을 강구하는 것일 거다. 이러한 대책이야 말로 로도스 섬의 성 요한 기사단이 몰타로 근거지를 옮겨 지금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법이었을 것이다. 현대화 시대에 몰락하고 있는 계급은 어떤 분류의 계급일까. 그렇다면 그 계급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계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대립이 아닌 스스로의 변화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상대측과의 현명한 타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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