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콘스탄티노플 함락' -국력과 외교

2008.02.05 00:08에 작성된 글입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 3부작 1 시오노 나나미

 

 

 

국가의 적은 안팎에 있다.

적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해주는 것은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방위력과 상대 국가와의 우호관계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中

 

 

 한 국가의 존망 여부는 안과 밖의 쌍방 요소에 있다. 어느 국가가 망했다면 그 것은 필시 국가 내의 문제와 국가 밖의 요소 그 쌍방의 과실일 것이다. 국가의 수장은 부국강병에 힘쓰면서도 필시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돈독히 해두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변 국가들이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의 국력을 가져야 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순망치한의 중요성을 항시 일깨워 줘야 한다. 동로마의 위용을 자랑하며 독특한 비잔틴 문화를 꽃피웠던 비잔틴제국은 둘 중 어느 쪽 하나 유지하지 못했기에 결국 1453년 5월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패망하였다.

 

 비잔틴제국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11세는 온화한 성품을 잃지 않는 자상한 국왕이었다. 그에게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들과는 다르고, 오리엔트 문명을 충분히 흡수하면서도 자기만의 독자성을 지켜온 비잔틴 문명의 상징, 콘스탄티노플을 지키라는 사명을 부여 받은 황제였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베네치아, 제노바등의 무역 교류의 중심지로서 동, 서 교류의 노른자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비잔틴제국은 그리스 정교의 대표 국가였다. 이는 가톨릭 중심의 서유럽 사회와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기 어려운 요소였다. 특히 15c 콘스탄티노플은 주변이 모두 이슬람 국가인 투르크 제국에게 둘러쌓여 있어서 섬 아닌 섬처럼 서유럽과는 분리되어있었다. 지정학적으로도 유럽 끝에 위치하여 유럽 본토와는 너무 떨어져 있었다. 이처럼 콘스탄티노플은 주변 투르크 국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국가인 서유럽 국가들의 적극적인 동맹을 이끌어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국가 내적인 상황은 어떠했을까.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유럽최강의 삼중 성벽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 내 인구는 외국 상인들을 포함하여 고작 4만여명 정도로 삼중성벽의 장점을 활용한 방어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숫자였다. 게다가 그 중에서 군인의 비율은 턱없이 낮었다. 그렇다고 강력한 군사적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유능한 대포 전문가를 놓쳐서 투르크에 강력한 대포무기를 제조하는 계기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콘스탄티노플은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의 연합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대립으로 국론이 분열되어있었으며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는 정교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나라가 투르크에 의해 망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뜻이라 생각하고 국가의 존망여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콘스탄티누스11세는 눈물겨운 콘스탄티노플 방어에 들어간다. 공사현장을 직접 다니며 방어선 구축에 온 힘을 다하고 정교의 강력한 반대 세력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의 연합을 주장한다. 연합 제안과 더불어 콘스탄티노플의 중요성을 인식한 베네치아, 제노바, 로마 등은 콘스탄티노플 방어에 원조를 해준다. 하지만 이들이 보내준 병력은 실로 미비하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베네치아만이 반투르크 자세를 취하였고 사실상 주요 무역지가 흑해부근인 제노바는 투르크의 눈치를 보느라 콘스탄티노플 방어에 지극히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나폴리와 같은 경우는 콘스탄티노플 방어를 방관하는 자세를 보였다. 가까운 불가리아의 경우는 아예 투르크와 동맹을 맺어버린 상황이었다. 그 어느 서유럽 국가도 콘스탄티노플 방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그들의 정신적 고향이 였던 로마제국의 적통자를 이처럼 방관한 것은 그 어느 국가도 콘스탄티노플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콘스탄티노플 스스로 침몰해가는 배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펼친 것이 너무 늦었었다. 결국 60여일간의 동,서 연합군의 처절한 방어전은 16만 투르크 군에 의해 무너진다. 콘스탄티노플은 이렇게 투르크에 함락되었다.

 

 스물한 살의 젊은 술탄 메메드2세는 투르크 제국이 어떻게 해야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냉혹한 우아함을 가진 술탄이었다. 그는 독단적이고 냉혹한 태도로 콘스탄티노플 공격을 반대하는 국내의 반대파를 제압하였다. 그리고 세르비아와 같은 동맹국들을 교묘하게 이용하였다. 이용당하는 동맹국 중 어디도 의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투르크는 그 정도로 강력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 메메드2세는 치밀하기도 하였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을 구원해주러 올 서유럽 국가가 없음을 정보망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콘스탄티노플의 삼중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은 대포의 이용뿐이라는 것을 알고 대포 개발자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였다. 그리고 베네치아가 사용하였던 땅굴파기 전략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부교를 놓기도 하고 군대를 효율적으로 교대하기도 하는 등 그는 치밀한 전략가였다. 이처럼 강력한 국가 내의 군력과 냉정한 카리스마적 외교로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였다.

 

 책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외교의 중요성을 역사적 사건을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그리고 외교에서의 힘은 자국의 국력에서 나오는 것임을 또한 일깨워준다. 국가들이란 존재는 참으로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생물들이다. 좀처럼 다른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비록 같은 문명권, 종교권이라고 해도 말이다. 오직 정치적 계산과 돈만이 그들을 움직인다. 이러한 국가 외교적 특성은 과거나 현재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강대국의 압박에 못 이겨 자국과는 상관없는 파병을 해야 하고 불합리한 협상일지라도 찬성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어쩔 수 없는 힘의 논리라며 자족한다. 그렇다면 환경문제와 같은 국경을 넘어 지구적 문제는 어떻 해야 하는가. 여기에도 외교적 힘의 논리가 작용해야 하는가. 강대국이라면 남들 배로 펑펑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도 뻔뻔스럽게 행동해도 되는가. 우리나라도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게 이러한 뻔뻔함을 따르기 위해서인가. 요즘 선진국 7위안에 들자고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러기 위해 운하를 파야 된다, 영어를 해야 한다, 유학을 많이 가야한다, 대기업을 키워야한다 등등 말이 참 많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국민소득만이 높은 선진국이 정말 국제사회에서 좋은 나라일까. 국내외의 인권문제, 환경문제, 복지문제 등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모범이 되는 나라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선진국일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에는 한 국가를 방어하고자 혹은 함락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전투를 벌인다. 국가 외교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주변 국가들이 정말 부러워하고 필요로 하는 그러한 외교 선진국이 되어야 참 좋은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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