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앙 로즈 그리고 서편제

2008.01.15 12:44에 작성된 글입니다



 

 영화<라비앙 로즈(La Mome)>에서 에디트 피아프는 자신의 마지막 공연에서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를 부른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어린 시절, 모함, 술과 마약,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 등 에디트의 삶은 계속되는 시련과 굴곡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특유의 쾌활함을 잃지 않았고 특히 마지막 샹송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상처 입은 작은 참새는 고통의 역정을 그냥 훠이훠이 넘어 날아버렸다.

 


 

 <서편제> 마지막에서 송화는 소리를 하고 동호는 북채를 잡는다. 눈 먼 송화는 "아버지 아직도 눈을 못 떴소"하며 '심청가'를 부른다. 그리고 동호의 북소리만으로 그가 자신의 동생임을 알아본다. 그들은 재회의 인사 대신 밤새 소리를 하고 북을 친다. 허나 한(恨) 많은 삶을 산 송화의 목소리에는 아버지나 세상에 대한 원망이 담겨져 있지 않다. 원망에서 벗어난 한을 통해 송화는 한을 뛰어넘는다.

 


 

 영화 '라비앙 로즈' 속 에디트 피아프가 부르는 샹송은 '서편제'의 송화가 목에 핏줄을 세우며 부르는 판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기묘한 일이다. 성격이 전혀 다른 인물인 에디트와 송화, 그리고 동,서양의 전혀 다른 세계에서 울려퍼지는 노래임에도 그 둘의 노래는 기묘하게도 어느 지점에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 연결고리는 한이 아닐까. <라비앙 로즈>에서 에디트는 한을 술과 샹송으로 풀어내었다면 <서편제>의 송화는 한을 쌓고 쌓다가 소리로 한을 넘어버림으로써 풀어내 버린다.

 


 

 얼마 전 가수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박진영이 어느 토크쇼에 나와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키우고 있는 한 가수의 노래를 미국의 어느 거장에게 들려주었더니 그 거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애 힘들게 살아왔지?" 아마도 유년시절 비슷한 삶을 살았을 그 거장은 한국의 어느 신인가수의 목소리에서 그 아이의 삶을 읽어냈었으리라. 가수 혹은 명창에게 소리란 어떤 존재인 것인가? 노래할 수 있어 기쁘다는 가수들을 보면 그들은 노래로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에디트와 송화가 만나면 밤새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새삼 한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대신 정말 둘은 재미있게 밤새도록 이야기 할 것만 같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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