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디지털 리마스터링 - 센과 치히로와 직장인의 행방불명

평일의 한가운데인 수요일이었다. 회사에 대통령이 왔는데 보안상의 이유로 직원 전체가 휴일이란다. 앞으로 회사에 대통령이 종종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처럼 수요일의 조조 영화를 보았다. 기분좋게 영화관으로 가 내가 선택한 영화는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이전부터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그의 작품이 재밌다기보다는 무서웠다. 그의 작품에는 늘 귀신이 나왔고 상상력 범위 밖의 이야기가 전개되었으니까. 그러던 몇해전 현대카드에서 주최한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 (http://yogathumb.tistory.com/128)에 다녀왔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도 결국은 회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엄청난 노가다의 시간 끝에 이런 대작이 나온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산출보다 투입이 많은 회사는 망하기 마련이고 스튜디오 지브리도 해체수순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씁슬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치히로가 주인공으로서 자격이 있는 것은 잡아먹히지 않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미야자키 하야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어린 소녀의 성장을 다루면서도 모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서 치히로를 변화하게 하는 곳은 온천장이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치히로가 우연히 들린 곳은 폐허의 놀이공원이다. 그리고 그 놀이공원이 초현실적인 온천장으로 탈바꿈하면서 치히로의 모험이 시작된다.


층층히 쌓아올린 일본식 목조건물의 외형 만큼 온천장은 하나의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 다층적인 장소다. 지극히 일본의 토착 신앙적인 정서가 묻어나면서도 서양의 물건들이 공존한다. 신들이 쉬어가는 휴양지이면서 동시에 고된 노동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생존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 온천장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곳은 노동의 공간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이 곳에 남아 있을 수 없다. 마녀 유바바가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이름과 기억을 빼앗기는 대가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이름을 빼앗긴 뒤에도 뼈빠지게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석탄이 되어 불에 타거나 돼지가 되어 베이컨이 된다. 유바바는 황금만능주의의 대변인으로 묘사되며 이 곳에서 일하는 이들도 황금에 굴신한다.




부모가 돼지가 된 모습을 보고 치히로는 도망치는 대신 망설임 없이 온천장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치히로는 ‘치히로千尋( 천심, 헤아릴 수 없는 깊이)’라는 본명을 빼앗기고 ‘센千(千尋중에서 千자를 떼어)’이라 불리며 고된 일을 하게 된다. 이후 치히로는 온천장의 고된 일을 도맡아 한다. 모두가 꺼려하는 오물의 신이 방문하자, 치히로는 그의 시중을 든다. 비록 마녀 유바바의 명령이기는 하지만 치히로는 용감하고 성실하게 오물의 신의 목욕을 돕는다. 그와중에 그녀의 온몸은 오물로 더러워지지만 그래도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임무를 해낸다.


이처럼 온천장은 치히로에게 다양한 의미의 장소로 변모한다. 두려움의 장소에서, 호기심의 장소로 그리고 노동의 장소에서 깨달음의 장소로. 온천장의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치히로의 성장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영화가 시작될 때의 치히로와 비교해보라). 선과 악이 뒤엉킨 이 공간에서 그녀는 자신을 지키고 나아가 다른 누군가의 삶을 또한 지켜낸다. 노동에 묻혀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치히로는 끝까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치히로가 잡아먹히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이자 마법이었다.





"여주인공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가 그곳에서 용케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악을 파괴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 미야자키 하야오


이 세상은 선악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세계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선악에 대한 잣대가 아니라 그 어떤 역경에서도 스스로 꿋꿋하게 일어서는 힘일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황금만능주의와 인간의 노둥의 굴레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이나 옹호를 하기보다는 위기의 국면마다 치히로가 선택하는 길들을 찬찬히 따라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한 소녀의 강한 자아와 가능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온천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가오나시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오나시(顔無し)는 ‘얼굴이 없다’는 뜻이다. 영화는 가오나시를 통해 강자만이 살아남는 현재의 시대에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경종을 울린다.



<샌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는 여자아이지만 강인함으로 스스로와 부모님은 물론 친구를 구해낸다. 그리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비정한 온천장에서 유일하게 따스함을 잃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나의 직장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러한 치히로와 같은 지혜와 행동이 아닐까. 직장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스스로 위축되거나 투덜대지말고 두려움을 떨쳐내고 한발짝 앞으로 나가는 용기와 주변 사람을 살피는 따스함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 자신(이름)에 대해 끝까지 잊지 않고 버티어나가는 과정이 결국 내가 진정 바라던 곳으로 가는 길이 되지 않을까. 지난 몇주간 나는 회사에 다니는 목적과 회사생활의 의의에 대해 행방불명이었다. 나는 열살인 치히로에게 아직도 배울게 많다.


영화를 보는 내내 회사를 한 편으로 떠올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은 회사를 안가도 된다는 생각에 미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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