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베리아 내사랑'-시베리아, 들개, 희망

'시베리아 내사랑'을 보고


시베리아, 들개, 희망

 



 시베리아 대륙에는 두 종류의 개가 살고 있다. 하나는 거친 산과 들판을 때로 뭉쳐 다니고 헐떡거리며 지나가는 짐승과 사람을 잡아 먹는 들개들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과 함께 살며 야생보다는 길들여짐에 가까운 삶을 사는 시베리아 허스키이다. 이리와 자칼(jackal)에서 같이 뿌리 뻗어 나왔으나 한 쪽은 야생에서 다른 한쪽에서는 문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시베리아에 실재로 존재하는 모나무르(Monamour)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광활하고도 척박한 이 땅에서 인간들은 들개처럼 헐떡거리며 산다. 자신의 욕구 해소를 위해 창녀를 데려오라는 상관, 그 명령을 이행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전쟁영웅, 이콘을 훔쳐 달아나는 도둑들 등. 척박한 환경의 먹이사슬 속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하는 이들의 이빨은 여전히 날카롭고 거칠다.


 질레즈냑은 들개마냥 류보비를 겁탈하던 알랙산드르 대위에게 하극상으로 맞선다. 그리고 우연히 하극상 도중 허공에 갈긴 총알에 지나가던 유리가 맞고 들개들의 먹이가 된다. 이 하극상을 계기로 하여 다른 트랙을 달리던 이야기는 서서히 이어진다. 알랙산드로 대위는 질레즈냑과 류보비를 통해 내적인 변화를 겪는다. 그저 들개마냥 헐떡이고 있던 자신 앞에 벌어진 사건을 통해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던 듯 하다. 그리고 유리의 죽음 이후 고난을 겪던 이반과 레시아를 구한다.


 영화에는 두 개의 그림이 등장한다. 하나는 이반 할아버지가 소중히 간직하던 이콘이고 다른 하나는 술에 취한 질레즈냑을 류보비가 도와준 후 비쳐지는 두 천사의 그림이다. 이 두 개의 그림은 들개와 인간이 나눠지는 곳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헐떡거리지만 그 와중에도 자비慈悲를 실현하는 인류애적 희망이 보인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이상理想 일지는 모르나 인간이 발현해내는 자비는 우리 앞에서 기적을 보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백치(idiot)에서 미쉬뀐 공작을 빌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가 말한 아름다움이란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선한 정신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윤리적인 의미를 말한다. 바로 이 선한 정신이 세상을 구원하는 빛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믿은 듯 하다. 모나무르 산 주변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의 방식과 정의正義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 감독은 인간의 희망은 남을 깊이 사랑하고 베푸는 자비에 있다고 보는 듯 하다. 그리고 이러한 자비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들개보다 시베리안 허스키가 낫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인간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비 혹은 선한 정신을 발현하고는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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