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빛과 주름
- 감상
- 2013. 8. 21. 12:33
빛과 주름
한 개인의 얼굴에 새겨 있는 주름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반증하고 있다. 그가 유복하게 자랐는지, 평소에 어떤 표정을 짓고는 했는지, 일평생 중 웃을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 등이 주름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보이고는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박물관에 가는 것은 그 나라의 주름살을 보는 것과 같다 생각한다. 깊게 패인 주름이 한 사람의 역사를 담고 있듯 박물관은 한 국가의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박물관은 그 주름이 재구성 된 곳이란 점에서 자연스럽게 패인 개인의 주름과는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박물관에서 한 국가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역사를 접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근현대사를 거치며 패인 주름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그것은 고난과 역경의 주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긍심이 담긴 눈가의 미소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든 지나간 역사를 되돌이켜보면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다. 식민지, 전쟁의 상처, 민주화,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얻어진 자랑스러운 성취 이면에는 고통스러운 상흔이 함께 존재한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이를 마치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를 따르는 듯한 구조로 보여준다. ‘고난과 역경’의 역사 속에 이를 ‘극복’하고 ‘도전’하며 마침내 ‘성취’하는 서사적인 구조는 마지막 한류와 핸드폰의 역사로 끝이 난다. 이 점에서 많이 아쉽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닌 ‘지금’의 시점에서 쓰여져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우리 역사가 내세울 것은 결국 k-pop스타들과 세계 최초 곡면 OLED와 삼성의 핸드폰 수출이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전시 전체적으로 내용은 부실하게 그지 없고 겉모습만 화려한 디스플레이나 IT기기 들이 많았다. 각 층마다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터치형 설명 기기는 역사 책 한 장 분량의 컨텐츠조차 담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에 재생되는 영상은 화려하기만 할 뿐 오히려 박물관을 떠나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러한 것들이 보톡스를 맞은 주름처럼 그저 겉보기에만 좋게 하려 한 것은 아닌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분명 세계사 속에서 빛나는 역사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이 빛을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빛이 너무 밝으면 결국 주름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결국 그 주름에서 보이는 역사적 이야기들 이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조금은 그 우리 역사가 겪은 주름의 깊이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마지막 전시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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