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미술관]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부암동에 다녀왔다. 그곳에는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맑은 날 가벼이 걷기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걷다 보면 주변에 괜찮은 카페와 식당들이 있음은 보행자에게 큰 매력이다.

 

 

 

 

환기미술관에 다녀왔다. 미술관을 가는 이유는 미술관이라는 공간 그 자체를 좋아함이 크다. 미술관을 가는 길은 미술작품을 보러 간다는 설렘에 더불어 작품들을 담아내는 미술관 자체는 어떠한 공간일지 호기심이 가득하다. 미술작품은 평면이되 공간은 입체적이다. 2차원의 작품이 3차원의 공간에서 관객들에게 불쑥 튀어나온다.

 

 

 

김환기 화백이 1974년에 작고한 이후 미망인 김향안 여사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기리고 유지를 받들고자 환기재단을 설립하였다. 작가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해오던 이 재단은 1992년에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한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설립자, 설계자의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

 

설립자 메시지

아무리 아름다운 집을 지었어도 미술관에 담겨진 내용이 빈약하여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할 때, 미술관은 아무 것도 아니다.”

디렉터 메시지

미술관의 건축 설계는 수화 선생과 친분이 깊었던 우규승 선생의 작품으로 외관상 민족정서를 일깨우는 한국적 재료, 즉 화강암 등을 이용하였으며 지붕의 돔과 색깔 있는 화강암의 벽면 구성 등은 김환기 선생의 작품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내부의 전시공간은 자유스러우면서 독립적인 배치로 시대별 주제별로 작업을 나누어 소개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설계자 메시지

"미술관은 수화 선생님의 정서와 예술에 어울리는 곳이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그분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 , 구름, 바위, 나무 같은 자연과 어울리고 한국의 정취가 있으며 현대적인 세련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암동 골짜기는 큰 건물이 들어가기에는 스케일이 작다. 그리고 부지는 대지면적이 제한되어 있는 한편 그 형태도 복잡하다. 반면에 미술관은 전시실 및 공용공간에 높은 천정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주거환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용적이 요구된다. 이러한 상반된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우선 상당한 프로그램 공간을 지하공간에 배치하도록 계획했고, 건물은 분절시켜서 여러 개의 건물이 모이는 집합형태를 취하는 설계개념을 설정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각의 건물은 서로 다른 형태와 기능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전제로서는 집합체로서 미술관의 의미와 기능을 갖게 된다."

 

 

김환기 화백이 온전히 느껴지는 미술관이라 생각했다. 운이 좋게 때 마침 김환기 탄생 100주년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여태 이곳 저곳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그의 작품들 만을 보았었는데 오늘은 제대로 보겠구나 했다. 한 명의 화가를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미술관이나 전시회는 그 화가를 최대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의 초년 작품부터 말년의 삶까지를 차츰 따라 가다 보면 작품들이 점차 스스로 말을 걸어온다. 마지막 작품에 이르는 여정의 끝마침에서 몰려오는 카타르시스란

 


김환기의 작품들은 화선지에 그려낸 서양화 혹은 캔버스 위에 그려낸 동양화와도 같았다. 동양의 정신이 추상화의 형태로 나타난 느낌이랄까. 그의 작품들은 근원적인 형태의 표상들을 간직하면서 아울러 민족을 상징하는 시적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색, , 선을 이용하여 한 폭의 그림에 노래를 담고자 했다.

 





이 날 나를 가장 강렬히 사로 잡은 작품은 바로 1970년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연작 중 한 작품이었다. 멀리서 보면 화폭에 먹이 번진 듯 얼룩덜룩해 보이는 이 거대한 작품은 가까이에서 보면 수 많은 비스무리한 네모 칸들로 이루어져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은 다르게 생긴 수 많은 네모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내가 작품을 보고 있는 동안 저 수 많은 점들 중 하나도 나를 보고 있는 것 아닐까. 사실 그의 이 작품은 이산怡山 김광섭 선생의 저녁에라는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 별과 나는 분명히 다른 존재이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그 모습에서 우리는 상대를 통해 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를 기약하게 된다. 이러한 하나됨을 잠시라도 격렬히 경험한 너와 나의 이 인연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인연인 것이다.

 

우연히 같은 날에 윤동주 문학관에도 들렀었다. 윤동주는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를 새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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