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황혼의 사무라이'-전복에도 이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 감상
- 2013. 9. 20. 00:43
'황혼의 사무라이'를 보고
전복에도 이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금요일의 저녁이었다. 설장구 연습을 마친 뒤 저녁을 함께 하자던 친구들을 뒤로 하고 자양동의 어느 마트로 향했다. 얼마 전 어느 광고에서 전복 스파게티를 보았는데 오래 알아 온 여자친구가 그 요리를 좋아할 것 같았다. 다만 그 가격이 비싸기에 직접 해주어야겠다 생각했다. 마트에서 그녀를 만나 이런 저런 재료를 함께 사서 집에 갔다.
요리를 시작하는데 전복이 문제였다. 둘 다 여태 전복을 요리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살아 꿈틀대는 전복을. 어쩌면 살아 있는 것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 처음이었을 지도 모른다. 잠시 망설였다. 그래도 맛있는 전복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칼을 들었다. 어설프게 칼로 껍데기를 벗겨내려다 애꿎은 전복은 내장만 터진 채 사후경직을 일으켰다. 인터넷에서 방법을 찾아보니 수저로 전복의 껍데기를 벗겨낸 후 입을 제거하고 이빨을 뽑아내라 되어 있었다. 전복도 이빨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신기함과 함께 살아 있는 녀석의 주둥이를 잘라 내야 한다는 것이 섬뜩했다. 그래도 나는 결국 전복 두 마리의 주둥이를 잘라내고 허연 이빨을 꺼낸 후 녀석들을 잘게 썰었다. 그 와중에 파스타 면이 비록 뿔었으나 우리는 그 날 저녁 봉골레 전복 파스타를 먹을 수 있었다.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는 19세기 후반 어느 하급 사무라이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창고지기 일을 하고 있는 무사 ‘세이베이’는 두 딸과 노모를 돌보기 위해 일과가 끝나 황혼이 질 때면 곧바로 집으로 간다. 폐결핵으로 죽은 아내의 장례식을 위해 칼 조차 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그는 검술 훈련이 아닌 밭을 갈고 저녁을 준비 한다. 그는 싸우기를 원치 않고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하루하루 커가는 두 딸을 보며 삶의 보람을 느낀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상과는 다른 구도를 취한다. 하지만 그 시절의 명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는 결국 성주의 명령을 받들고 어쩔 수 없이 칼을 든다. 요고를 처단하러 가는 그는 지독히도 살고 싶었을 것이다. 살아 남아 사랑하는 가족들 과 도모에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칼을 버렸던 그는 결국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 가기 위해 칼집에서 칼을 꺼내 휘두른다.
그는 일본 에도 막부 말기를 살아가던 사무라이를 대변하나 동시에 세상의 모든 가부장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험한 세파 속에서도 아둥바둥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모든 남자들의 숙명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호미로 밭을 갈고 목검을 휘두르고 전복에도 이빨이 있다는 사실을 가끔씩 알아가는 것. 어쩌면 모든 남자들은 단검을 차고 살아가는 세이베이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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