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처용]황금과 순수

근 몇 달 사이에 국립중앙박물관과 경주를 다녀왔었다. 두 군데 모두 신라와 밀접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 전시되어있던 금관, 금 귀걸이, 새날개 등은 백제, 고구려에서는 보기 힘든 세밀함과 화려함을 보이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제 49대 헌강왕 때의 신라는 기와집이 즐비하고 매일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경주는 지금도 땅을 파면 많은 유물들이 나오고 있다.

 

신라는 예로부터 신비하고 눈부신 황금의 나라라고 불렸다. 전 세계에서 출토된 금관은 모두 10여점인데 그 중에 신라 시대의 것이 6점이다. 경주에 가면 볼 수 있는 금관총, 금령총 등의 총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금관이 출토되어 이름 붙여졌다. 아마 신라시대 경주 지역에서는 사금이 많이 채취되고는 했었나 보다. 지금도 경주는 사금 채취가 취미인 사람들이 찾고는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금들은 대부분 실용품이 아닌 힘과 권위를 나타내는 위세품에 사용되었다. 눈부시도록 화려한 신라의 금관들은 평소에는 보관되어 있다가 소유자가 죽으면 함께 묻히는 식이었다고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절제와 용맹의 화랑도 정신은 신라의 부흥과 함께 점차 사 그러 들었을 지 모른다. 일부 귀족과 왕족들이 부를 축적하며 향락을 취할 수록 일반 백성들의 삶은 고달파졌을 것이다. 연출가 양정웅씨의 말대로 신라 말기는 황금을 숭배했지만 스스로 황금의 감옥에 갇혀 멸망으로 치달은 불쌍한 사람들의 나라였을지 모른다.

 

                           

오페라 처용의 배경은 왕건에 의해 신라가 멸망하기 직전 통일신라 헌강왕 시절이다. 신라 지배층의 부패와 타락에 실망한 옥황상제가 신라를 버리려 하자 아들 처용은 나를 신라 땅에 보내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이 때 무대 앞 화면에는 9.11테러, 전쟁 등과 같은 영상이 반복하여 재생되고 있다. 처용은 신라를 구원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말하는 신라는 지금 물질욕과 향락에 빠져 있는우리 시대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을 바꿔보려는 처용은 세상 사람들의 침과 오물과 주먹질 범벅이 된다. 중간 중간 어느 노승이 등장하지만 그는 그저 현실을 지켜보기만 한다. 유혹을 상징하는 역신은 계속하여 처용과 대립한다. 유혹 앞에 흔들리는 인간을 상징하는 가실은 처용의 순수한 영혼을 만나 구원을 꿈꾼다. 이 세 사람이 서있는 무대는 영상과 혼합되고 이들의 표정을 보며 관객들은 이들의 갈등이 현재와 교차함을 느낀다. 황금색의 무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에 따라 그 색을 달리한다. 바그너의 유도동기(Leitmotif)는 극 중 인물과 주변 상황을 상징하며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오페라는 후반부에 가 감정의 격렬함에 이른다. 결국 처용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부패와 타락으로 치달은 인간들은 어두운 본성을 그대로 간직하며 신라는 몰락의 절망을 겪는다.

 

                                 

우리는 신라의 찬란한 문화 유산들을 보며 그 시대를 찬양하고 경배한다. 우리는 각종 음주가무가 밤낮으로 이어지고 자본과 물질로 얼룩진 이 시대를 마치 풍요롭고 살기 좋은 시대로 묘사하고 믿는다. 오페라 처용은 우리에게 처용이라는 인물을 빌어 이 시대의 순수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흔히 황금은 순수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상과 순수가 한낱 금 장식 하나만도 못한 값어치로 매기어질 때 그 시대는 아마 역사의 마지막 장으로 기억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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