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 전 장관님 특강] 한편의 연극 같은 연극인의 삶

마지막 봄 비가 그친 뒤 다소 흐린 하루였다. 당분간은 비 없이 맑을 거라 하니 아마 이번에 내린 비가 올 해 마지막 봄 비가 될 듯 하다. 아산서원에 입소하던 때 활짝 피었던 꽃들의 그 정취를 미쳐 충분히 즐길새 없이 숨가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이 곳에서의 생활도 한달 여가 되어간다.

 



저녁 특강으로 손숙 전 장관님(이러한 호칭을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하셔 이하 교수님으로 호칭)께서 특별히 아산서원 제3기 원생들을 만나러 오셨다. 강연 시간보다 조금 일찍 오신 손숙 교수님께서는 아산서원 라운지에 모이셔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고희(古稀)를 바라보시는 나이에도 학생들과의 만남을 너무도 반가워 하시며 아산서원의 취지를 극찬하셨다. 이후 시작된 강연에서는 극단의 배우에서 제6대 환경부 장관으로까지 그리고 다시 배우로서 활동하시는 교수님의 굴곡이 큰 삶과 연극에 대한 열정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2시간여 진행된 특강 시간 동안 3기 원생 모두 교수님의 연극 같은 삶에 푹 빠져들었다.

 





강연의 전반은 교수님의 생애의 시간적 순서를 따랐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커스와 국극(國劇)을 보며 호기심이 강한 아이로 성장한 소녀는 자식을 꼭 자신과는 다르게 키우겠다는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상경하였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서울에서 외로움을 통해 문학에 눈을 뜬 계기, 짝꿍과의 편지 주고 받기를 통해 느낀 아름다운 언어 사용의 즐거움과 첫 연극 관람에서의 충격은 자연스럽게 소녀를 연극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였다. 고등학교에서의 연극 생활, 대학교에서의 연극에 대한 불타는 열정, 결혼 후 찾아 온 우울증을 다시 연극으로 극복한 후 그 뒤의 이야기들까지 교수님의 젊은 시절 연극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연극을 약에 비유하셨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TV나 대중문화 들은 대량 생산되는 약에 가깝다면 연극은 주치의가 손수 정성 들여 달여낸 약과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연극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보는 사람 모두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 하셨다.

 

한편 강연 후반부에서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 문화의 현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로 개탄을 하셨다. 전국 방방 곳곳 수 많은 공연시설이 만들어졌지만 정작 그 시설의 완성도나 활용도는 매우 떨어지며 이를 활용할 소프트웨어가 부재한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하셨다. 특히 우리나라는 연극과 같은 순수 예술이 설 곳이 매우 적다고 하셨다. 또한 교수님께서 경제는 문화와 함께 가는 것이라 하셨는데 이처럼 문화의 기본적 조건이 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희망이 없다 하시면서 백범 김구 선생의 문화 강국론을 읽어주셨다. 나 또한 손숙 교수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하며 진정한 문화 강국이란 K-POP과 같은 대중 문화 이전에 그것의 뿌리가 되는 순수예술이 인정 받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한 가지 더 지적하신 부분은 바로 점차 천박해져 가는 관객 문화였다. 점차 TV시청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정작 연극 공연에 와서도 TV를 보듯 관람을 하다 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셨다. 극장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는 물론이고 연기자에 대한 예의 없음을 지적하셨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박수를 칠 줄 모르는 관객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셨다. 좋은 연극은 배우, 관객, 장소라는 3박자에서 나오는 것인데 요즘 관객들은 환호를 통한 배우와의 공감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고 하셨다. 교수님께서도 호응이 좋은 공연일수록 더 나은 연기가 나온다고 하시며 배우를 살리는 것은 결국 관객의 몫이라 하셨다. 그리고 여러 가지 팁 중 공연을 즐기는 세가지 자세에 대해 말씀 해 주셨는데 그 첫 번째는 좋은 관객으로서의 태도, 두 번째는 작품에 대해 미리 알고 가기, 세 번째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서 박수를 많이 치기였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교수님께서는 본인의 인상 중 가장 드라마틱했던 부분 중 하나를 이야기 해주셨다. 교수님께서 여성시대라는 라디오 코너의 DJ를 맡으시던 때였다. 수년간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들은 것은 그 어느 대학의 공부보다 값진 것일 거라 하셨다. IMF 당시에는 비통한 사연들이 자주 왔다고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애청자로부터 자신이 경제적으로 파탄이 나게 된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방송이 끝난 후 자살하겠다는 편지가 왔다. 교수님께서는 방송 내내 제발 죽지 말라고 울며 사정을 하셨다고 하셨다. 방송이 끝난 이후에도 그 남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몰랐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난해에 연극어머니의 분장실에 어느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데리고 와서 고맙다고 했다고 한다. 그 남자는 바로 방송을 통해 살겠다고 마음을 바꾼 그 남자였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그날 그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공연을 보여 줄 수 있음이 너무도 기뻤다고 하셨다.

 

연극 같은 연극인의 삶을 사신 손숙 교수님의 강연이었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향해 가는 것 그 자체가 행복한 삶이라 생각했다. 교수님께서는 이번 주 목요일에 3기생들에게 자신의 연극을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미 한 편의 연극을 본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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