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의 어머니]신주단지

 지난 월요일에 아산서원에서 특강을 해주신 손숙 선생님께서 본인의 연극에 직접 초청해주셨다. 작품을 통해 배우를 접하기 전에 작품 밖에서의 실제 모습을 보고 가는 터라 평소에 연극을 보러 가는 느낌과 달랐다. 특강 때의 모습과 연기자로서의 모습 사이의 교집합과 여집합을 생각해보았다.



 이날 극장에 가는 길은 지하철에서 혜원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눈과 입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가 엄청났다. 혜원이가 연극을 했으면 참 잘 했을 거라 생각했다.



손숙 선생님의 어머니는 크게 3막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주인공인 두리할머니(손숙)는 이미 장성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과 알콩달콩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지아비 돌이가 찾아오고 이를 계기로 할머니는 신주단지에 묻혀 두었던 자신의 한()맺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연극은 지금의 시대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전쟁을 넘나든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여성의 일대기적 삶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겪은,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슬픔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관객의 연령대에 따라 작품 속 공감대의 형성은 다르게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다분히 희생적이고 순종적으로 살아야만 했던 그 시대의 어머니들의 희로애락을 지금의 우리는 공감하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개인으로서 그 시대를 살아가셨을 우리 어머니들의 변함없는 모성애, 억척스러움 그리고 용기는 연극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된다.





 이 날 연극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이 남은 것은 할머니가 시집갈 때 가져온 신주단지였다. 본명이 일순’이인 두리’ 할머니는 일생에서 남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일들을 이 신주단지에게 털어놓고는 하였다. 감나무에 매달려 울부 짖던 '양산복'을 두고 고향을 떠난 뒤 자신만이 안고 살아야 하는 일들을 할머니는 신주단지에 묻어 놓은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남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하는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정진홍 교수님의 열림과 닫힘수업에서 개개인마다 만들어진 개별적 추억과 강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일반화된 추억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개개인들에 의해 축적된 추억은 공유되기를 거부 한다. 자신만이 바로 그 추억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우리 개개인은 각자만의 연극을 하며 살아가는 것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다 겪는 시련의 모습을 외부인은 슬프고 한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련들은 주인공 본인에게는 그저 자신이 묵묵히 안고 가는 하나의 신주단지일 뿐이다. 커다란 슬픔들도 시간이 흐르면 신주단지 속 하나의 이야기가 될 뿐이다. 그저 가끔은 그 시주단지에서 끄집어내 회상해보는 이야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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