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동체는 되살아 나야 한다

최근 들어 부쩍 성범죄에 대한 뉴스가 많다. 성범죄에 대한 뉴스 보도가 많아진 것도 있겠지만 성범죄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뉴스들을 보면서 성범죄자들은 갈 수록 늘어나는지, 어째서 법은 그들을 막지 못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성범죄자들을 감옥에 잡아넣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러한 범죄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성범죄자가 늘어나는 이유, 법이 피해자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이유, 한 개인이 성범죄자가 되는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공동체의 붕괴'라고 생각한다. 현대화, 공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들은 무너지고 구성원이라는 시시콜콜한 관계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서로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개개인들이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옆집에 누가 사는지, 그 집 자식은 누구인지, 그 날 저녁은 뭘 먹는지 등에 관심을 갖지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시시콜콜하고 정 붙이려는 사람들을 귀찮아하고 멀리한다. 우리 사회는 어느덧 옆짚 아저씨에게 '인사'하는 것 조차 어색한 사회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옆집에 신경쓰지 않는다. 옆집에 사는 이웃의 자녀가 괴물로 자라든 무엇으로 자라든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내 생활반경 안에서 이웃이 내게 해를 끼치지만 않으면 된다. 과거의 공동체에서는 내 자식이 아닌 옆집의 자녀도 훈계와 교육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콘크리트 덩어리속에서는 더 이상 옆집 아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없게 되었다.

 

지역 소규모의 공동체가 무너지고 거대한 인구가 빽빽히 몰려살게 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이웃이 누구인지 알게 힘들게 되었다. 더 이상 이웃이 누구인지 알게 될 수 없게 된 우리는 법과 공권력의 힘을 믿고 그들에게 우리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맡긴다. 하지만 때로는 법과 공권력은 너무 멀다. 이번의 수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전과자에게 경찰의 보호감시, 전자발찌 등은 전혀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위험한 시기 일수록 뭉쳐야 할 공동체는 파괴되고 개인 만이 남았다.

 

공동체의 파괴 속에서 개개인은 외롭게 자라난다. 학교, 학원 등에서 만나고 해어지는 일과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들을 기다리는 건 맞벌이하는 부모의 빈공간과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아파트이다. 그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건 바쁜 그들의 부모들 뿐이다.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는 그들에게는 그저 이름 모를 이웃일 뿐이다. 혹여 갑작스레 도움이 필요하더라도 아이들은 집주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른다.

 

보다 자주 이웃 주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법과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의 지대를 지역 공동체가 채워야 한다. 외로운 이웃이 있거든 먼저 다가가 위로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소규모 지역 공동체들이 살아나야 우리는 더 이상 괴물들을 보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마음 따스한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아는 분께서 사시는 아파트에 가족사진과 함께 하나의 글이 하나 붙어 있었다고 한다. "저희 가족은 자녀 둘을 둔 4인 가족입니다. 한 달에 한 두번씩 저희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 하실 분 있으신가요? 식사는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밑에 볼펜으로 답장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따스한 마음 정말 감사합니다. 연락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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