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를 만드는 사람들 - 김의준 단장님 인터뷰

 (국립오페라단 블로그에 기재된 글 입니다. 한나래, 전혜진 멘토님께서 에디트 해주셨습니다.)

 

 

KNO오페라캐스터의 찾아가는 릴레이인터뷰 - 오페라를 만드는 사람들

 

 

국립오페라단 김의준 단장

2011.08~ 국립오페라단 단장

2011 ~ 현재 LG아트센터 자문
2010년 제3회 공연예술경영상 대상

2007.6 ~ 2010.12 AAPPAC(Association of

Asia Pacific Performing Arts Centres), 아시아태평양공연장연합회 부회장

2005 LG연암문화재단 부사장

1996.7 ~ 2010.12 LG 연암문화재단 LG아트센터대표
1984.11 ~ 1996.6 예술의전당 사원 ~ 공연사업국장

1996~2010 LG아트센터 대표

고려대학교 영문과 학사

 

 

높아진 하늘만큼 뜨거운 햇살이 한 걸음 물러나고 시나브로 가을에 접어든 지난 9 14, KNO오페라캐스터<오··(페라의 감동을 전하는 자)>팀의 미남 인터뷰어 2인방은 예술의전당을 찾아갔습니다. 바로 국립오페라단 김의준 단장님을 인터뷰하기 위해서 입니다.

최근 많은 대학생들이 문화예술계에서 미래를 찾고자 합니다. 오페라, 뮤지컬, 연극, 음악공연, 축제 등 특히 공연예술계는 많은 학생들에게 젊음을 모두 바치고 싶은 매력적인 분야입니다. 공연예술 세계로의 진입을 꿈꾸는 젊은이의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그 관문은 점점 더 좁디 좁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

 

KNO오페라캐스터는 그 좁은 길을 먼저 걸어가신 예술경영의 30년 베테랑, 국립오페라단 김의준 단장님께 그 어렵고 좁은 길을 여쭙기로 했습니다.

 

 

 

주춧돌에서 시작된 공연예술계와의 인연

 

Q 단장님은 어떻게 처음 공연예술계와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나는 원래 처음부터 이 쪽 사람은 아니고 원래는 모 건설회사에 다녔었어요. 그러다 예술의 전당을 짓는데 내가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1984 11월 초 예술의전당 첫 삽을 뜰 때(기공식 때)는 이 곳을 짓는 한 명의 건설인이었지만 공사가 끝난 후에도 예술의전당에 남게 되었지요. 나는 원래 예술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곳에 남는 다면 뭔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공연예술계의 발전에 힘을 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자금을 끌어 오는 일이었지요. 그 때는 공연예술을 위한 기부금 문화가 거의 없었지만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어요. 이리저리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았는데 특히 예술의전당 지을 때 공사에 참여했던 시공업체들에게 많은 기부금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자금이 예술의전당 초기 공연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12년 간 예술의전당에서 근무하고 이후, 1996년부터는 LG아트센터의 주춧돌도 놓게 되었습니다. LG아트센터 착공에서부터 15년 간 LG아트센터를 맡아 운영하다가 현재는 정부의 부름을 받고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실수가 기억에 남는다 예술의전당과 파이프 오르간

 

Q 공연예술계에 종사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신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잘한 것들보다는 실수 했던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 뒤에 가본 적 있나요? 공연무대를 제작해본 사람이라면 그 곳이 뭔가 허전함을 알 겁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공간이 비어있는데 사실 거기는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될 자리였지요. 파이프 오르간의 반음계 파이프 하나하나를 스톱(stop)이라고 하는데 20여 년 전에 108스톱 짜리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려고 했었지요. 유럽의 유명한 파이프오르간 장인들과 연락을 시도했는데 당시에는 외국과의 거래가 굉장히 드문 일이어서 어떻게 거래를 해야 할 지 아무도 몰라서 결국에는 파이프 오르간을 가장 싸게 파는 업체를 고르기 위해 경매방식으로 입찰을 매겼어요. 예술가들에게 입찰을 시킨 셈이지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선택된 독일의 업체에게 이행보증을 요구했었습니다. 이 일을 지금 돌이켜보면 마치 피카소 그림과 르누와르 그림을 입찰시키는 것과 같은 실수이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 방식이 옳다고 생각했지요. 아무도 이전에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결국 거래는 무효가 되었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파이프오르간을 위한 공간이 비어 있습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예술성을 보고 선정한 게 아니라 값을 보고 경매를 하려 한 게 잘못 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들이 모여 지금의 예술의전당이 있는 거겠지요.”

 

 

 

국립오페라단 국민을 위한 오페라 전파소

Q. 현재 몸 담고 계시는 국립오페라단은 어떤 곳입니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알다시피 시민, 국민, 국립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 되는 곳이지요. 정부 지원금의 원천은 세금이라면 결국 국립의 공연은 내 돈을 가지고 만드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의 경우에도 전체 티켓 중 30%정도가 판매 수익이고 나머지는 세금으로 보충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오페라단이 올리는 오페라는 국민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립오페라단은 국민의 단체이고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공연예술의 주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국제화 시대가 되면서 관객들의 수준이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올려지는 공연 보다 한참 앞서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오페라단도 더욱 분발하여 앞서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용 극장, 오케스트라, 싱어, 합창단 등이 갖추어졌으면 합니다. 경제가 더욱 발전하면 국립오페라단 스스로 이러한 것을 갖추는 것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극장경영, 공연장경영을 담당하던 내가 현재 이 곳에서 단장으로서 할 일은 지난 50년간 높은 예술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다소 간과 될 수 있었던 부분들을 좀더 공고히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오페라 시장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오페라에 대한 수요는 한참 확장되고 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확장되는 게 아니라 옷이 찢어질 듯이 급격히 확장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페라를 잘 만들어서라기 보다는 국민들의 수요, 욕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국내의 뮤지컬 시장이 지금처럼 커진 것은 15년 전 <오페라의 유령>9개월 정도 장기 상연되면서 관객수가 24만 명 정도로 늘어났던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뮤지컬의 성황을 주도했던 관객들이 2004년 즈음부터 발레로 많이 옮겨갔습니다. 저수지가 가득 차면 여수로로 물이 흘러내리 듯 한 분야의 관객이 다른 곳으로도 유입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지금은 뮤지컬, 발레 등의 관객들이 오페라로 넘어 오는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0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는 많은 시민들이 예술의전당 착공을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많은 공연장이 있고 관객들은 보다 높은 퀄리티를 가진 공연을 원하고 있습니다. 수준 높은 공연을 원하는 관객들은 수준 높은 공연예술무대로 자연스럽게 건너 오는 중입니다. 국립오페라단의 경우에도 최근 준비하고 있는 <카르멘>에 대한 관객의 호응이 좋아서 1회 공연을 급히 추가했습니다. 오페라 시장이 앞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혁신이 필요한가, 기존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게 중요한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한다!

 

국립오페라단 단장직은 임기가 3년 정도됩니다. 외국의 단장들은 수 십 년 동안 단체를 이끌어가기도 하지만 국내의 국립단체들은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단체를 지속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혁신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단체를 장기적으로 보고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의 역할은 다음 적임자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것이지만 국립오페라단을 장기적 안목으로 혁신적으로 이끌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50여 년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국립오페라단이 되어야 하겠지요. 현재의 단장으로서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다음해, 그 다음해의 프로그램들이 미리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관객 분들도 미리 어떤 오페라가 공연될지를 알고 계획을 세우고 티켓을 구매할 수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문화예술 분야는 연봉이 적습니다. 이 돈 받고 어떻게 일하나 싶을 정도 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비록 박봉이지만 아랫사람을 키워주는 문화가 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랫사람이 잘 되면 나도 잘 되는 거지요.”

 

 

 

세계로 나아가는 국립오페라단 밖으로 밖으로

 

▲ 국립오페라단 창단 50주년-한중수교 20주년 기념 오페라<라보엠>

(2012년 4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5월 중국국가대극원 공연)

 

내 임기 동안 최대한 많은 직원들을 외국 구경을 시켜주고 싶습니다. 직원들에 대한 교육이자 사기 진작으로 해외에 나갈 여러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직원들을 해외 경험 시키는 것은 서양 것을 그대로 가져오려는 게 아니라 수백 년 동안 그들이 해온 것을 보고 배워 우리 실정에 맞게 받아들이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믿고 일을 맡깁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전문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맡기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공연예술 분야, 예술경영인으로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숲을 볼 수 있는 곳, 바로 여기!

여기는 전문가들이 일하는 곳입니다. 박봉일지라도 내 길이라 생각하고 자기 일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요. 무엇보다 이 분야의 매력은 일을 처음 하는 때부터 숲을 볼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입니다. 오페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천국 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환기시켜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이 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면 끊임없이 공연장 주변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곳 주변을 계속 맴돌면서 공연장에서, 공연예술계에서 요구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지요. 공연장에서 원하는 인재는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일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입니다. 즉 이 분야에서 미리 많은 일을 경험해봐야 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자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그 것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피곤하지가 않지요. 영화감독 김기덕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전심전력을 다 하는 사람, 추위도 더위도 모르고 자기 일에 열정을 다하고 그 일에 미치는 사람,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평생토록 도전하고 헌신하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해주고 싶습니다.”

일찍이 공자께서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지난 30여 년 대한민국 공연예술계의 예술경영인으로 몸 담았던 긴 이야기를 시종일관 객관적이면서 솔직하고 담담하게 들려주셨지만 인터뷰를 통해 어딘가 깊은 곳에는 "락지자(樂之者)"의 마음을 품고 계시는 김의준 단장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내일의 길이 좁고 험하다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좁은 길 끝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깁니다. 최고의 무대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시는 무대와 무대 뒤의 많은 분들, 그리고 이제 새로운 꿈을 품고 그 좁은 길로 들어서려는 미래의 젊은 예술경영인들, 모두에게 파이팅을 전합니다!

 

 

▲ 즐겁게 인터뷰를 마치고 마무리는 단장님과의 단체사진. 찰칵!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