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트로이의 여인들'을 보고

2008.01.07 13:10에 작성된 글입니다.

‘트로이의 여인들’을 보고


 극은 멸망당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부인이자 헥토르의 어머니인 헤카베의 절규로 시작한다. 헤카베의 절규 이후에 낡은 옷차림의 여성들이 나타나 자신이 어떻게 일본의 군위안부로 끌려가게 되었는지 어두운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공연은 이처럼 전쟁 속의 트로이의 여인들과 군위안부 희생자들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면서 전쟁 속 여성들의 한(恨)을 보여준다. 역사는 시대의 한 순간만을 보여주고 서사는 이야기의 늘어놓음에 지나지 않으나 극은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문제의 보편성을 보여줌으로써 가치를 얻는 것이다. 비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전쟁 속 희생되는 여성들을 보여줌으로써 인류가 수 천 년 동안,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전쟁 속 여성들의 슬픔을 판소리, 살풀이 등을 통해 보여준다.

 극 중 헥트로의 아내인 안드로마케는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 차라리 죽은 폴릭세네가 행복하겠다고 말한다. 차라리 죽음을 부러워하는 ‘트로이의 여인들’에게서 그들이 겪어야할 고통의 무게가 느껴진다. 마치 그들을 전리품인 마냥 나누어 가질 트로이의 군인들 앞에서 이 여인들은 무엇을 꿈꿀 수 있겠는가.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에 의한 군위안부 희생자들은 얼마나 하루하루를 육체적, 정신적 치욕과 모멸감 속에서 살아야 했을까. 극이 진행되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구분되기 어려워진다. 그들은 단순히 그 시대의 희생자들이 아니라 보스니아 내전은 물론, 인류 역사 속에서 여성으로서 겪어온 피해자들의 대변인이 된다. 극 마지막 부분에서 행해지는 살풀이의 대상은 전쟁 속 고통을 겪은 모든 여성들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극의 시작과 끝에 올라오고 내려가는 무대 안이 훤히 보이는 얇은 망은 무대와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연극은 연극이지만 그 안의 진실은 무대 안이나 무대 밖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극 속에서 겪는 여성들의 고통은 과거에도 있었고 우리가 극을 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디에서는 남성은 물론 여성들 또한 전쟁의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 여러 곳곳에서 헤카베, 안드로마케, 군위안부 희생자분들과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인류 역사가 과연 수 천년동안 과연 얼마나 나아졌는가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극 중 전쟁이 끝난 뒤 풀려난 군위안부 희생자들은 여전히 암울해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죽은 사람 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고향에 못 돌아간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에서 그들이 당한 육체적, 정신적 상처는 너무 깊어 그들을 정상적 사회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쟁이 끝난 사회에서 마저 그들을 돌보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민족적 수치로서 부정해버리고 싶어 할 뿐 이였다. 게다가 전쟁 당사자인 일본의 눈가리고 아웅식의 비반성적 역사태도는 군위안부 희생자분들께 얼마나 커다란 분노를 일으켰겠는가. 트로이 전쟁 후 노예가 된 헤카베의 남은여생은 얼마나 절망과 분노의 연속 이였겠는가. 전쟁 당시의 고통 뿐 만 아니라 전쟁 이후에 남겨지는 희생자들의 한(恨)은 누구에 의해 풀어질 수 있겠는가.

 전쟁의 비극은 비단 남성들만의 아픔도 여성들만의 아픔도 아니다. 승전국은 승전국대로 패전국은 패전국대로의 아픔과 고통을 가진다. 전쟁에서 남는 것은 결국 아픔뿐이다. 하지만 전쟁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군위안부 문제를 외면하려고만 하지 해결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여전히 ‘트로이 전쟁’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희생자들은 여전히 진정한 살풀이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등지에서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수많은 남성과 여성들이 전쟁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수많은 반전단체, 여성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NGO등이 노력하고 있지만 전쟁 속 여성 억압은 지금도 존재한다.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존 레논의 'Imagine'과 같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전쟁을 막기 위해 행동적 자세 또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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