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색깔을 간직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599호 대학내일에 실린 제 기사 원본입니다.

 

도시의 색깔을 간직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건조함 속의 다양성과 역동성

네덜란드=안정기 학생리포터 yogathumb@gmail.com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유럽에서 새해 가장 첫 번째로 열리는 영화제인 로테르담국제영화제(International Film Festival Rotterdam)가 1월 25일부터 2월 5일까지 12일여 동안 열렸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매년 열리는 이 영화제는 올해로 41해를 맞이한 역사가 깊은 축제로 젊은 영화, 종래의 관습에 물들지 않은 실험적이고도 대안적인 비서구권 독립영화들이 주류를 이룬다. 비경쟁 영화제이지만 타이거상을 마련하여 일부분에 한하여 수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감독들도 여러 차례 이 상을 수상한 바 있어 영화제 안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은 상당하다(1997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2011년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까지 총 4차례 수상). 프랑스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영화제에 간다는 것은 씨네필(cinephile)에게는 마치 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 했다. 철저한 금욕의 수도사의 생활은 아닐지라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한명으로서 잠시나마 그 기분을 느껴보고자 그리고 로테르담 거주자로서 이번 영화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 8시 30분. 아직 매표소 조차 열리지 않은 시간.


  영화제는 영화광들에게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도 했던가, 아침 8시 반부터 영화관에 입장하기 위해 줄서 있는 사람들

하얀 종이 위 호랑이 얼굴 덜렁

영화제의 성격은 도시 로테르담을 많이 닮았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되었던 이 도시는 전후 새롭고 진취적인 세계 무역의 중심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또한 지금도 시내 곳곳 독특한 파사드를 갖춘 신축과 재건축이 이어지는 변화와 혁신의 도시이기도 하다(네덜란드에서는 보기 힘든 초고층 빌딩들이 Maas강을 따라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현대적 도시의 느낌 때문일까? 로테르담 주민들은 네덜란드에서 종종 차갑고 계산적이며 게다가 무미건조한 사람 취급을 받을 때가 있다. 이번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내가 느낀 첫 번째 인상 또한 이와 같은 건조함이었다. 하얀 종이 위에 달랑 호랑이 얼굴 하나 그려져 있는 포스터의 지나친 간소함. 영화제라면 흔히 등장하는 레드카펫은 커녕(깐느, 베를린 영화제를 떠올려보라) 유명배우들의 옷깃조차 보이지 않는 극도의 검소함. 그리고 축제 기간 중 상영되는 500여 편 영화 대부분이 저예산 독립영화인지라 할리우드 스타일의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는 그 중 손으로 꼽아야 할 정도의 허전함. 과연 이 영화제가 유럽에서 다섯 순위 안에 꼽히는 영화제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단순한 것이 특징인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포스터. 단순하게 생긴 저 호랑이가 영화제의 상징 캐릭터이다
 

건조함 속의 다양성과 역동성

하지만 점차 축제 기간의 한복판에 들어서면서 내가 느낀 이러한 ‘건조함’이 수도원에 처음 들어서는 초보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저 첫 느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500여 편의 상영 영화 목록을 찬찬이 들여다보면 그 다양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휴고’와 같은 큰 규모의 영화에서부터 ‘물고기’와 같은 저예산 영화까지, 흑백 다큐멘터리에서부터 에니메이션·3D까지, 신예 감독들부터 노장의 감독들까지 로테르담 영화제는 그 어느 영화제보다도 다양한 영화들을 갖추고 있다(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이광국 감독의 ‘로맨스 조’이다. 타지에서 한국 영화를 보는 노스텔지어와 함께 그 탄탄하고도 몽환적인 스토리에 푹 빠졌었다). 게다가 도발적이다. 친구들 중에서는 당최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어 상영 도중 나간 경우도 있었고 포로노급의 영화가 나와 무척 당황했다던 친구들도 있었을 정도로 출품작의 작품성에 논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적 작품들로 인한 몇몇 오해들에도 불구하고 젊은 감독들을 공격적으로 발굴해낸다는 진취적이며 실험지향적인 비전은 로테르담인들이 가진 변화와 혁신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확실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제는 국제적이면서도 동시에 지역 주민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하였다. 매년 30만 명이 참여하는 이 영화제의 주된 참여 및 봉사활동 층은 역시 이 도시의 주민들이다. 보통 축제라 하면 수많은 홍보를 통해 많은 외부인들을 유치하여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축제와 그 도시의 구성원들이 화합을 이루며 상호간에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 일 것이다. 국제적이면서 지역의 색이 묻어나는 이 영화제의 진원지는 역시 로테르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찍이 아이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영화를 보러 오신 어느 아주머니께서 하셨던 말이 기억에 깊이 남는다. “이 영화, 영화제 그리고 이 도시 모두가 너무도 잘 어울리지 않나요?”(그 날 아침에 상영된 영화는 안드리아 아놀드 감독을 통해 새롭게 해석된 ‘폭풍의 언덕’이었다. 어쨌든 로테르담은 늘 거센 바람이 부니...)

이 날의 6개 대형 극장의 영화 스케쥴



타이거상 경쟁부분 후보로 올랐던 ‘로맨스 조’의 감독 이광국 감독이 Q&A를 가지고 있는 모습



 대학내일 링크 : 
http://www.naeilshot.co.kr/Articles/RecentView.aspx?p=3KBPc0gc7lp5Sm6he5f0y4syfMalBP4pVcIf22UOm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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