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트리스탄과 이졸데 -사랑의 죽음(Liebestod)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

고통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었으려니…” –트리스탄과 이졸데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1865년 초연)’는 극이 전개 될 수록 점차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이다. 그리고 그 블랙홀은 사랑이라는 인간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다. 바그너는 이러한 사랑이라는 인간의 감정을 오페라를 통하여 전체예술(종합예술)로 표현해냈다. 켈트 문화권의 전설을 바탕으로 구전 되어 오던 어느 전설을 그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오페라로 탄생 시킨 것이다. 사랑과 모험, 불가사의한 신비와 인간의 열정이 만들어내는 이 이야기는 바그너의 천재적인 시적인 감수성과 음악적 재능(비록 연주에는 능하지 못했지만)을 입어 사랑에 관한 불멸의 예술적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사랑의 시작은 사회적 의무와 개인적 열정 사이에서 출발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슬픔 속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뜻의 트리스탄은 아일랜드 공주 이졸데를 자신의 삼촌이자 왕인 마르케에게 신부로 바치고자 배에 태워 데려간다. 과거에 트리스탄이 이졸데의 약혼자 모롤트를 죽였지만 트리스탄이 모롤트에게 받은 상처를 치료해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왕에게 바치려는 트리스탄에게 분노한 이졸데는 콘월로 가는 배 안에서 그와 함께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죽으려 한다. 트리스탄 또한 이 것이 독약인 줄 눈치를 채지만 그녀가 건 낸 잔을 기꺼이 마신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시녀 브랑게네는 독약을 사랑의 미약으로 바꿔 쳐서 이졸데에게 주었었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사랑에 빠지게 된다.


  왕인 마르케와 이졸데가 결혼을 한 뒤에도 그녀와 트리스탄은 몰래 밀회를 즐긴다. 그러다 두 사람은 왕의 신하인 멜로트에 의해 밀회 현장이 발각되고 왕은 비통한 심정으로 노래를 한다. 그리고 트리스탄은 멜로트의 칼에 맞아 쓰러진다.


  트리스탄의 부하 쿠르베날은 트리스탄의 고향인 카레올로에 그를 데려와 치료를 하지만 그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졸데 뿐이다. 하지만 이졸데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며 사랑의 묘약을 저주하던 트리스탄은 이졸데가 마침내 배를 타고 도착하자 숨을 거둔다. 그 뒤를 이어 마르케 왕이 그 둘을 용서하러 오지만 이를 착각한 쿠르베날은 멜로트와의 결투 끝에 그와 함께 죽는다. 이에 마르케 왕은 자신의 가장 충직한 벗이자 후계자였던 트리스탄의 주음에 넋을 잃게 되고 죽은 트리스탄을 포홍한 채 정신을 잃고 있던 이졸데는 이미 죽은 그의 곁에서 부드럽고 고요하게미소 짓는 그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녀 역시 트리스탄과 함께 죽음에 이른다.


  바그너는 전체예술로서의 오페라의 주제는 한 시대의 성격에 사로잡히지 않은 본질적인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신화에 기반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과 그리스도교 그리고 불교에 영향을 받은 그는 인간존재의 비극적인 모순을 오페라를 통해 그려내고자 하였으며 독일 낭만파로서 구제의 이데아를 그 작품의 중심에 두었다. 사랑은 본디 고통스러운 것이며 죽음을 통해 결국에는 완성된다는 그의 사랑관이 집약적으로 그리고 지극히 예술적 시적 감수성으로 표현 된 것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시적인 내용을 바그너는 음악을 통해 그 몰입도를 극대화 시켰다. 저음의 첼로로 적막을 깨며 시작하는 서곡은 목관악기들의 연주를 통해 사랑에 대한 동경과 애타는 그리움 그리고 해소되지 않을 갈망의 여운을 남긴다. 일찍이 바그너는 베토벤 순례지에서 오케스트라는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심연을 재연해야 한다라며 오케스트라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때로 그의 작품에서의 오케스트라는 성악 이상의 깊은 내면의 울림을 전달하기도 하며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내용 그 자체를 전달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의 오케스트라 연주는 성악 성부를 빼고 듣더라도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과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그는 극의 전개와 심화에 관현악을 참가시키기 위해 유도 동기(Leitmotive)를 사용하였다. 악극이나 표제음악 등에서 곡 중의 주요인물이나 사물, 특정한 감정 등을 상징하는 악구를 뜻하는 유도 동기는 오케스트라가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심리의 진실을 웅변하는 힘을 가지게 해준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성악가들의 대사(언어)뿐만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라는 비언어적 표현에도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야 진정 바그너가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그는 음의 흐름을 중단시키지 않고 극의 진전을 계속하여 확장해 나가기 위해 무한선율(Unendiche Melodie)를 활용하였다. 아리아가 끝나면서 멜로디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음악이 확장되면서 아리아 이후의 레치타티보로 이어지며 생기는 분리의 단절은 듣는 사람들을 신비로운 도취상태에 빠지게 한다. 이것은 낭만주의의 무한성과 연관이 있으며 드라마와 음악의 전체 과정이 지속적인 흐름을 가지게 해준다.

 

 


동경에 가득 차, 나는 열반의 세계를 응시했습니다.

그랬더니 열반은 내게 곧 다시 트리스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불교의 우주 창조 원리를 아시겠지요.

하나의 숨결이 창공을 만들어 냅니다.

-1860년 트리스탄 작곡 당시의 연인 마틸데 베젠동크에게 보낸 편지 중

 



  오페라를 보는 내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오직 사랑의 이야기로서만 다가온다. 죽으려 마신 독배 때문에 사랑에 빠진 연인들 그리고 그 사랑에 의해 결국 죽게 되는 이 모순이야 말로 사랑의 속성에는 본디 고통과 죽음이 담겨 있다는 바그너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는 사랑의 묘약만큼 달콤하지만 동시에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고문이 어디에 있을까.


  사랑은 괴로운 것일까?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사랑에 빠지게 된 두 사람은 그 상처보다 더욱 큰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일상을 초월한 특별하고 영원한 사랑, 금기를 위반한 데에 따르는 극심한 고통을 인내하는 사랑, 죽음조차 초월하고자 하는 사랑을 꿈꾸는 연인일수록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그들이 겪는 고통은 배가 되어 커진다.


요즘 시대의 사랑은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사랑이다. 빠르게 희열에 빠지고 이내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에서 도피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좀처럼 사랑을 통해 상처 받기를 두려워한다. 사랑의 달콤함과 따스함은 도착적으로 갈망하나 그 이후에 찾아오는 고통에는 몸서리치고 회피하고자 한다. 지난 상처를 잊고자 사랑에 쉽게 빠지며 상처를 입지 않고자 사랑에서 쉽게 빠져 나온다. 이러한 경향은 어설프게 여러 차례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랑은 갈망하나 사랑에는 회의적이며 사랑을 찾고자 하나 그것에서 오는 고통에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려 하나 결국에는 좀처럼 자신을 던지지 못한다.


  바삐 그 모든 것이 변하고 사람간의 관계도 순간적으로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사랑의 가치와 방식도 바쁘게 변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그너는 그의 오페라를 통해 말한다. 사랑에는 희극적인 요소와 함께 분명히 비극적인 요소가 존재한다고. 사랑의 과정 속에서는 사회적 의무와 개인적 열정이 부딪히게 되어 있으며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 동시에 구원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고. 어쩌면 사랑이 가진 이러한 고통을 인내하고 견뎌내는 연인들 만이 결국 죽음을 초월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묘약으로 인해 괴로움 속에서 발버둥 치며 죽어가던 트리스탄은 그 와중에도 이졸데를 태운 배를 애타게 기다린다. 이러한 기다림, 고통을 겪어 본 자만이 진정으로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죽음(Liebestod)’ 아리아를 부르며 죽음의 순간에 이르는 이졸데는 트리스탄의 미소를 본다. 사랑. 그것은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게 되는 이자 인 것이다.



 

-2013 9 27일 케네디센터에서 공연을 본 뒤

 


Tristan: Ian Storey; Clifton Forbis
Isolde: Iréne Theorin; Alwyn Mellor
Brangäne: Elizabeth Bishop
Kurwenal: James Rutherford
King Marke: Wilhelm Schwinghammer

Conductor: Philippe Auguin
Director: Neil Armfield
Costume Designer: Jennie Tate
Lighting Designer: Toby Se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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