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속 문화 차이
- 일상
- 2012. 8. 29. 00:56
지내다 보면 문득문득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문화차이를 느끼게 된다. 네덜란드에서 살 던 때는 그다지 문화 차이를 느끼지 못한 채 산 듯 하였는데 다시 한국에 돌아오니 생활 속에서 듬성듬성 다른 무언가를 느낀다. 네덜란드에 있을 때는 한국과 네덜란드가 꽤나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한국에서 지내며 네덜란드와 한국이 꽤 다르구나 하고 펀득펀득 깨닫는다.
얼마 전에는 모 방송사에서 주최한 독서토론 대회에 며칠 간 다녀왔었다. 네덜란드에서 디베이팅 소사이어티에서도 활동했었고 대회에도 나가본 적이 있는터라 토론에 대한 별 심적 부담 없이 갔었다. 하지만 첫번째 라운드를 마치고 심사평을 듣는 시간에 나는 한국과 네덜란드의 문화를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꼈다.
내가 네덜란드에서 접했던 토론은 약간 과장 보태서 피튀길 듯한 디베이팅(토론)이었다. 일단 상대 팀(비록 나랑 찬반이 같더라도)에 대한 배려는 별 필요가 없었다. 상대방을 칭찬할 시간에 우리 팀의 주장이 왜 다른 팀들의 주장보다 합리적으로 우수한지를 말하는 것이 시간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훨씬 나았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흑백논리로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원색적 비난, 흑백논리, 과장을 한다고 해도 훈련된 배심원들은 절대 속지 않는다) 논리성과 지식을 바탕으로 직설적인(꽃아내리는 말투로) 어투로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러차례 디베이팅 교육을 받았었으나 상대방의 주장을 옹호하며 감싸안아주며 나의 주장을 펼치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었다. 이해하기 쉬운 구조, 탄탄한 논리력, 주장에 걸맞는 적절한 예시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이 디베이팅의 기본이자 핵심이라 그들에게 배웠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의 토론에서 심사위원측이 말하는 소히 '좋은 토론'에 대해서 들은바는 위의 내용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 갔었던 토론은 독서토론이고 네덜란드에서 했던 토론은 의회 방식의 디베이팅이었다. 사실 한국어로서 토론이라는 단어와 영어로 디베이팅(debating)이라는 단어는 약간의 어감차가 있음을 느낀다. Debating을 번역하면 토론이라 하겠으나 디베이팅이라는 단어에는 보다 논리적이고 직설적인 어떠한 분위기가 좀 더 함축되어 있다. 어쨌든, 한국의 심사위원들이 제일 먼저 충고해주었던 것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였다. 심사위원들은 일단 날카로운 말투,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자세, 뭔가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제스쳐들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다. 그것이 입론이었던 반론이었든 자유토론이었든 무엇이었든 상대방의 의견을 쳐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예의를 지켜가며 상대방을 반박하라는 것이었다. 치열해야 할 논쟁의 과정에서도 예의를 최우선이라는 이 멘트는 상당히 큰 어떠한 차이로 내게 다가왔었다.
또한 한국의 토론에서는 팀웍을 굉장히 중요시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팀웍은 굉장히 중요하다. 팀원간의 유기적 관계가 잘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함은 토론 하는 내내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심사위원들은 개개인의 논리성이나 창의성보다는 팀웍에 보다 초점을 두는 듯한 조언을 해주었었다. 나는 팀웍을 계속하여 다른 요소들 보다도 중시하는 심사위원들의 조언들에 과연 이들이 추구하는 토론은 무엇인가 갸우뚱하였다. 심사위원들은 몇몇 말 잘하는 사람들보다는 전체적으로 팀원 모두가 의견을 고루고루 내기를 대회 내내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심사위원의 구성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유럽의 유명한 디베이팅 대회들을 보면 심사위원이 대부분 참가자들과 비슷하 나이의 사람들이다. 대게 지난해 대회 챔피언이거나 다른 대회 우승자들을 초대하여 심사위원을 부탁한다. 비록 학생이라고는 하나 심사위원들의 수준은 교수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들의 논리력, 지식, 태도 등은 그들 앞에서 발표를 하느 내 스스로 내 발언에 책임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높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로서의 시각으로 발표자들을 심사한다. 발표하는 자와 듣는자 모두 비슷한 나이의 입장에서 토론하고 그에 대해 심사를 하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었고 하고 있는 사람이 나의 생각을 평가하는 유럽의 디베이팅에 나는 큰 매력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에 비해 내가 참여했던 한국의 토론대회의 심사위원들은 교수 혹은 기자, 소설가였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셨던 심사위원들께서는 일단 학생들인 우리를 저 발 밑에 놓고 보게 된다. 내가 잘 아는 무언가를 말하여도 공감보다는 '제대로 아는 것도 없이 설레발 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무난히 예의를 어기지 않으며 이야기 하는 것이 그 분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전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흔히 토론이란 상대방을 이겨서 내 의견이 옳다고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진정한 토론이란 상대방을 이기는 과정이 아니라 설득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토론 속에는 문화적 차이가 존재 한다. 논리력과 이성의 힘으로 날카롭게 상대방을 파고들어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토론이 있고 상대방의 의견을 끌어안으며 뭉툭한 날카로움으로 상대방을 감화시키는 토론이 있다. 겉보기에는 냉정하지만 속으로 웃는 토론이 있고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 칼을 가는 토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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