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SCO 세계문화 유산> 네덜란드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Schokland

  지난 달 네덜란드 친구와 헤이그의 어느 카페에서 한 주간의 여행 방학 계획을 짰었다. 나는 친구에게 가장 네덜란드 다운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그가 첫번째로 손 꼽은 곳이 바로 Schokland였다. 친구는 신문지를 찢어서 그곳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그곳은 네덜란드 북부에 있는 Zuiderzee(조이데르 해, Southern Sea, 상대적으로 북해 밑에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 북부에 위치함에도 Zuiderzee라 불린다)에 있는 섬이었으나 Zuiderzee가 20세기에 간척사업으로 대부분이 토지가 되는 과정에서 육지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 덕에 간척사업으로 평평한 대지 위에 볼록 솟아 있는 Schokland(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네덜란드 문화유산 중 최초로 1995년에 등록됨)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곳이 왜 가장 네덜란드 다운 곳인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한 주간의 방학 중 금요일을 이용하여 친구와 그 곳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Amersfoort로 가는 기차를 타서 중간에 Utrechtd에서 친구와 합류하였다. Amersfoort에 도착한 우리는 Zwolle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서 Kampen에서 내렸다. 그리고 맞은편 버스 승강장에 가서 간척지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린 뒤에도 우리는 Schokland까지 한 시간 가량을 걸어가야 했다. Schokland로 가는 과정은 환승에 환승을 거듭하는 복잡하고 꽤나 먼 곳이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친구와 준비해온 차와 간식 그리고 내가 준비해온 주스를 마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에 결코 먼 길이라 할 수 없었다.




Noordoostpolder(polder:네덜란드의 연안에 발달한 간척지)의 지도. 간척지로 탄생한 Flevoland(네덜란드 12개 Province 중의 하나, 2200km2)의 municipality 중 한 곳인 이 곳에 Schokland가 위치해 있다. 참고로 Noordoostpolder는 네덜란드 municipality 중에서 토지면적으로는 가장 큰 땅이다. 




네덜란드인들의 전통 나막신인 Klompen(나막신). Klompen은 간척사업으로 끊임없이 영토를 개척한 네덜란드인들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더 이상 이 나막신을 신고 다니는 사람을 보기는 힘들어 졌지만 이렇게 네덜란드 여행을 다니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인들의 상징이라기에는 Klompen은 너무 귀엽게 생겼다 ㅎ.

1989년에 새워진 이 동상 'BAANBREKER'은 간척사업에 투입되었던 노동자들의 의지를 상징한다.
 

이 곳에서도 운하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운하는 IJsselmeer(IJssel Lake)과 연결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Schokland로 가는 길에 찍은 표지판. 3km남았다는 거 같다.



480km2 이 곳  노르트오스트폴더는 대부분이 국유지로 그 목적은 경작지로 쓰인다. 넓디 넓은 평지는 이처럼 많은 작물들을 길러낸다. 가는 길에 파노라마 모드로 촬영한 사진.



우리는 중간에 옆 풀밭에 앉아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차 그리고 주스로 맛난 점심식사를 먹었다. 이 날 여행은 구름이 많이 끼고 기온도 낮았지만 따뜻한 차가 있어서 중간 중간 우리는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들이 Schokland이다. 다른 평지에 비해 약간 솟아 있는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것은 Schokland가 본래 섬이었기 때문이다.

Schokland로 들어가는 표지판


척박한 자연환경과 투쟁하며 생존한 네덜란드인들의 의지가 담겨있는 그림




Island on Dry Land
'신은 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네덜란드인은 네덜란드 국토를 창조했다'
 

  Schokland에 사람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middle Stone Age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곳은 늘 파도와 태풍으로 끊임 없는 자연 재해에 시달렸는데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5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1287년과 1421년의 대재해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본래 네덜란드 영토와 연결된 반도였던 이 곳은 15세기 후반 들어 Zuyderzee tidal movement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점차 섬으로 고립된다. 이 곳 사람들은 주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였는데 제방과 테르펜을 건설 할 정도로 넉넉지 못하여 주변 도시로부터 도움을 받아 계속하여 주거지를 보호하려 하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재해와 질병 등으로 인해 국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이 곳의 삶은 피폐해졌고 결국 1858년 Willem 3세는 주민들을 육지로 강제 이주 하는 Act에서 사인한다. 1859년 마지막 주민이 떠나고 섬의 
침식이 심해지자 배수하여 선박의 휴식처나 방파제로 사용하였다. 토목기사이자 장관이었던 코르넬리스 렐리는 1918년 간척사업을 계획하고 1927년부터 자위더르해에 대단위 간척사업을 하기 위한 제방공사가 시작되어 1932년  제방이 건설되었다.  1936년부터 draining 작업이 시작되었고 1942년에Schokland는 다시 본토와 이어졌다. 이것으로 자위더르해는 제방 바깥쪽의 와덴해와 안쪽의 에이설호로 나누어졌다. 쇼클란트가 있는 노르트호스트폴더는 1937∼1942년에 공사가 이루어졌다. 이 곳에는 선사시대에 인류가 살았던 흔적인 여러 동물화석과 수렵도구·토기 등이 출토되어 에이설호 간척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95년 UNESCO는 이 곳을 네덜란드 문화 유산 중  첫번째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제한다.






자위더르 방조제의 길이는 세계 최장인 새만금 방조제(33km) 보다 500m 짧은 32.5km로, 새만금 방조제 이전까지 세계 최장의 방조제였다. 2004년 기준으로 연간 5백만명의 관광객을 끌어 들여 1조 2천억원의 관광수입을 거두고 있다.새만금 사업과 규모가 비슷한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간척사업은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불과 3년(1929~1932년)만에 방조제 공사를 끝냈다. 나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찬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흐지부지 토론 아닌 토론만을 하다 결국에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되돌이킬 수 없는 시점까지 국민 전체적인 합의를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할 수 밖에 없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Drop 사탕


2011년 11월 11일이라서 그런걸까?Schokland에 있는 교회에서 이 날  평일임에도 여러 커플들이  결혼 하였다.




저 멀리 보이는 평야들이 이전에는 바다였다.



Schokland 주민들 전통 의상



나막신



과거 주민 사진들



좁은 방파제를 지날 때 이렇게 서로 마주보게 되면서로가 허리를 잡고 돌려서 건너야 했다고 한다. 우스게 소리로 Schok Dance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하더라.



수면보다 낮은 schokland를 재미있게 표현 한 그림



과거에는 바다였던 곳이 지금은 이렇게 넓디 넓은 평지다.



교회. 과거에는 바닷물이 교회 밑까지 올라와서 창문이 저렇게 높이 설치되어 있다/



친구와 히치하이킹. 유네스코 문화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 한시간을 걸어 돌아가기가 막막하여 결국 우리는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계속되는 히치하이킹 실패로 우리는 고민을 잠시 했다. 결국 나는 젊은데다가 동양인이라서 둘이 같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것 보다친구 혼자 시도하는게 동정심을 좀 더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친구 혼자 시도해보았다.





결국에는 히치하이킹에 성공했냐고?

결국 우리는 실패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걸어 돌아온 길을 다시 한 시간을 걸어 돌아갔다. 날은 추웠지만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며 우리는 과거에는 바다위로 해가 졌을 석양을 보며 걸었다. 간척지로 얻어진 땅은 넓디도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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