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역사 여행 s-Hertogenbosch

  짧고도 치열한 1semester1term이 끝났다. 평소 공부는 꾸준히 했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슬럼프 때문에 짧게나마 방황의 기간이 있던 나에게 이번 시험은 마음을 다시 다잡을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어쨌든 시험을 앞둔 열흘 간은 시험과 영어 공부 외에는 별 생각 없이 집중 할 수 있었다. Final Essay제출로 2시간만 자고 다음날 수업 나간 날도 있었지만 그다지 힘들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마지막 과목이었던 Money, The arts and The Media시험을 목요일에 끝내고 나는 열흘 여 간의 방학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방학 시작 첫 날 나는 홀가분히 친구와 네덜란드 남동부의 작지만 중요한 도시 's-Hrtogenbosch'로 여행을 떠났다



  Rotterdam에서는 s-Hrtogenbosch로 바로 가는 기차가 없기 때문에 Utrecht를 경유해야 했다. Den Haag에 사는 친구도 여기 Utrecht를 경유해야 해서 우리는 오전 10시에 Utrecht Central 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하지만 tram이 연착되서 친구가 40분 늦게 출발하게 되어서 나는 잠시 Utrecht를 둘러볼 수 있었다. 이 도시의 가장 중요한 관광 명소이자 상징은 바로 사진 속 Dom church라고 할 수 있다. 전쟁과 화재로 수차례 무너져내리고 복구 되었지만, 굳건히 살아남아 Utrecht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도시 어느 곳에서도 잘 보이는 이 교회의 탑이 있기에 복잡한 골목길에서도 방향을 쉽게 감 잡을 수가 있다. 교회 앞 광장(원래는 교회의 일부분이였으나 파괴되어 이제는 광장으로 쓰이는)에서는 어느 결혼을 앞둔 커플이 웨딩촬영을 하고 있었다.





(중세, 르네상스, 모던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s-Hrtogenbosch 건물들)
  친구와 만난 후 우리는 우리의 목적지인 s-Hrtogenbosch로 향했다. 중앙역에서 만난 친구는 소풍가는 아이처럼 표정이 해 맑았는데 뭔가 잔뜩 짊어지고 있었다. 기차에서 뭔가 바리바리 하나씩 꺼내는데 알고 보니 보온병에 담아온 차, 점심으로 먹을 빵, 쌀과자, 사과 그리고 나에게 보여줄 각종 자료들을 바리바리 싸온 거였다. 친구의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고마웠다(나도 이 날 웰빙 과일 주스를 직접 만들어 왔었다). 덕분에 우리는 기차 안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 근황을 이야기 나눈 뒤 친구가 구글 트랜스레이터로 번역해온 Martinus Nijhoff의 시를 영어와 한글로 읽을 수 있었다.
 



De moeder de vrouw

Ik ging naar Bommel om de brug te zien.

Ik zag de nieuwe brug. Twee overzijden
die elkaar vroeger schenen te vermijden,
worden weer buren. Een minuut of tien
dat ik daar lag, in 't gras, mijn thee gedronken,
mijn hoofd vol van het landschap wijd en zijd -
laat mij daar midden uit de oneindigheid
een stem vernemen dat mijn oren klonken.

Het was een vrouw. Het schip dat zij bevoer
kwam langzaam stroomaf door de brug gevaren.
Zij was alleen aan dek, zij stond bij 't roer,

en wat zij zong hoorde ik dat psalmen waren.
O, dacht ik, o, dat daar mijn moeder voer.
Prijs God, zong zij, Zijn hand zal u bewaren.

The mother The woman

I went to Bommel to see the bridge.

I saw the new bridge. Two opposite sides
that in the past appeared to avoid each other,
are again neighbors. In but the few moments

that I lay there, in the grass, drank my tea,
my head full of the landscape far and wide—
in the middle of this endlessness, from nowhere, 
I heard a voice that sounded in my ears.

It was a woman. The ship that she steered 
came slowly downstream running under the bridge.
She was alone on deck, she stood next to the rudder,

from what she sang I heard that they were psalms.
O, I thought, o, that there was my mother sailing.
Praise God, she sang, His hand will care for you.  


이 시는 20세기 네덜란드 문학계의 중요한 시인인 Martinus Nijhoff의 작품으로  zaltbommel에 새로운 다리가 건설되는 것을 기념하여 쓴 시이다. Bommel에서 본 자연 경치와 여인(어머니로 느낀)에 대한 서정적인 시이다. s-Hrtogenbosch로 향하는 기차는 zaltbommel를 경유하였고 유유히 흐르는 mass강 위로 새로이 지어진(시가 지어진 이후에 다리는 또 다시 새로 지어졌다)다리를 볼 수 있었다.

[참고로 zaltbommel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주인 Gelderland에 속한 조그마한 마을로 인구 3만에 그 크기는 89.06 km2 이다. 참고로 매우 근접해 있는 s-Hrtogenbosch는 North Brabant주에 속한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하늘이 파아란 걷기에 너무도 기분 좋은 날이었다. s-Hrtogenbosch 중앙역에서 내려 시청을 지나 광장으로 가는길은 때 마침 열린 시장으로 사람과 상인들로북적북적했다. 광장 한 복판에서 우리는 이 도시의 자랑거리이자 대표적인 화가 Hieronymus Bosch의 동상을 만날 수 있었다. 환타지와 종교가 섞인 그의 작품은 달리 등 초현실주의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고 지금 사람들에게도 그의 작품은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판타지(어떤 사람은 엽기로도 느낄 수 있는)적 교훈을 그리고 있다. 









  s-Hrtogenbosch에 있는 어느 개신교 교회. 본래 벨기에의 영토 였던 지역 답게 전통적으로 North Brabant주는 로마 가톨릭이 대세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잠깐의 통일 시기에 네덜란드 왕(아마도 빌렘1세)이 가톨릭이 대세인 이 곳에 개신교의 교회를 지었다(네덜란드는 대표적인 신교 국가엿으며 벨기에는 대표적인 구교 국가였다. 이 때문에 1815년에 합병도 잠시, 종교적 차이로 인해 두 나라는 영영 다르 나라가 되었다 .








  친구가 Paris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보다도 더 아름다운 곳이라며 자랑하던 Sint-Jan Cathedral의 사진이다. 성당 정면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정말 노트르담 성당에 견주어도 결코 되지지 않을 너무도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매번 교회 혹은 성당 혹은 절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는 성인들을 모시는 이 건물들 만이 가지는 경건함과 신비로움은 종교적 공간이라는 인류에게 꼭 필요한 성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하다. 성당 안은  교회는 저녁에 있는 레퀴엠 공연 무대 설치로 바쁜 모습이었다. 교회 안 에는 Maria나무상을 모셔놓은 곳이 있었는데 이 곳 사람들은 이 Maria나무상을 The Miraculous Statue라고 하며 기적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여 매우 신성시 한다. 수 없이 많은 종교 전쟁을 치른 이 나라에서 이 기적의 조각상은 정말 기적처럼 수백년 동안 사람들에 의해 보호되고 보전되어 왔다. 그리고 수백년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교회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스테인 글라스들. 빛과의 절묘한 조합으로 성당의 내부는 신비로운으로 가득하다.



친구 말로는 단일 오르간으로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오르간이라고 한다.






수 많은 조각상들로 꾸며진 성당 외부




네덜란드인에게 실내 디자인은 빵집에서 조차자존심이다.





Sint-Jan Cathedral에 근접한 Hieronymus Bosch 미술관. 진품이 아닌 복사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진품들은 네덜란드 곳곳의 박물관들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 근처에서 우연히 친구의 친누나분을 만나기도 했다. 네덜란드 참 좁구나란 생각을 했다.




네덜란드 어느 도시에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운하. 물을 좋아하는 나는 운하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자전거 꾸미는 일은 중요하다. 첫번째 이유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자전거는 자동차만큼 중요한 운송 수단이자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두번째로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며서 도둑이 훔쳐가서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란다.




잠시 버스를 타고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숲속을 걸었다. 숲속을 걷가 보면 노부부들, 아기를 동반한 가족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숲 주변에는 수 많은 농가들이 있었다. 이 지역은 2차세계 대전 당시 폭격으로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던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농가들이 대부분 새로 지은 것들이었다.



 



  겨울에 얼면 스케이트 타기에 너무도 좋다는 호수.




저녁에는 Saint-Jan 성당에서 Bosch Requiem공연이 있었다. Wolfgang Amadeus Mozart의 Maurerische Trauemusik KV477, 암스트르담 대학 교수인 Dr.Herman Pleij의 강연(신기하게도 공연회 중간에 교수의 강연회가 있었다. 교수님께서 Dutch로 말씀하셔서 나는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친구 말로는 주제는 상상력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Main 공연은 네덜란드 작가인 Joesph Eybler의 Requiem이었다. 레퀴엠의 웅장함과 비장함의 합창 교회 전체에 울려퍼질 때는 듣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수백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이러한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 작곡가란 얼마나 창의적인 존재인가 세삼 다시 느꼈다.



 



공연 전에는 오르간 공연도 있었다.


오르간 내부는 외부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스크린을 보여주곤 한다.


공연이 끝나고 지휘자 Joost van Balkom이 박수에 응답하는 모습. 이 날 합창단원 중에는 친구의 또 다른 누나와 형부도 있었다. 네덜란드 정말 좁구나.



  공연이 끝난뒤 친구와 근처 카페에서 따스한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가진 뒤(성당 안은 난방이 안되어 좀 추웠었다) 우리는 기차역으로 향하였다. 이 나라의 이방인인 나에게 언제나 친절함과 따스함을 보여주는 친구가 너무도 고마웠다. 언제나 자신을 충실한 가이드라 부르며 나에게 이 나라에 정을 붙이고 익숙하게 생활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친구. 우리는 하우다 역에서 작별 인사를 하였고 기차는 밤을 달려 나를 다시 Rotterdam에 데려다 주었다.

  s-Hertogenbosch역 앞에는 네덜란드어로 이런 말이 써져 있었다. '여행은 언제나 새롭고 여행은 언제나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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