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인들의 존경받는 여왕 빌헬미나 Wilhelmina


선거로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을 뽑는 우리에게 왕이 있는 나라는 왠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네덜란드에 왔을 때 여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유와 관용의 나라인 네덜란드에 아직도 여왕이 있다니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전국토가 평평하듯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대우 받는 것을 추구하는 나라에 여왕이라는 존재는 Schokland(네덜란드 여행편 참고)처럼 뭔가 광활한 대지 위에 볼록 솟아있는 존재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아직 왕이나 여왕이 존재하는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요? 네덜란드와 가까이에 있는 영국이 있고 네덜란드 북쪽에 있는 스웨덴과 같은 여러 북유럽 국가들, 우리나라와 가까운 나라로는 일본, 중동에서도 찾아보자면 요르단 등 세계에는 아직도 여러 왕국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 잠깐 이론적인 이야기 해볼까요?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정치사상가 Montesquieu
몽테스키외(1689-1755)는 3권 분립(separation of three powers)을 주장했었습니다. 세 권력을 지금의 네덜란드에 적용시켜보면 이렇게 되겠죠.

-Executive power  ex)현 네덜란드 총리인 마르크 뤼터Mark Rutte

-Legislature power  ex)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네덜란드 의회

-Judiciary power ex)네덜란드 법원
 

 

그렇다면 지금의 네덜란드 여왕 베아트릭스Beatrix는 어느 권력에 속하는걸까요? 네덜란드의 군주제는 Hereditary monarchy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왕이나 여왕의 자리는 능력이 아닌 출생으로 인해 승계되는 것입니다(succession is based on birth, not merit). 서양사적 관점에서 군주제를 보면 다음과 같이 시기별로 나누어집니다.

-Medieval monarchy(6세기-16세기)

-Absolute monarchy (16세기-19세기)

-Constitutional monarchy (19세기 이후)


일반적으로 절대군주제에서의 군주가 가장 힘이 있고 지금의 입헌군주제의 군주가 가장 적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의 네덜란드의 군주는 사실상 상징적인 역할로 많이 제한됩니다. 형식상으로는 총리나 최고법원등의 임명을 베아트릭스가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 실제로 베아트릭스는 최공결정에 동의하고 임명하는 수준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왕의 의견이 힘을 갖지 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네덜란드인들이 그들의 여왕을 사랑하고 아끼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16세기 들어 유럽에는 중세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그들의 왕권을 정당화하는 여러 논리적 철학적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King's Two Bodies입니다. 왕은 두 개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 중 첫번째 몸이 바로 Body Natural입니다. 바로 인간 육체의 모습을 가진 왕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영속하지 못하며 때로는 불완전합니다. 때로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지요. 하지만 왕은 태생적으로 또 하나의 몸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Body Politic입니다. Body Politic은 신권이 부여된 몸입니다. 이것은 영속적이며 완벽하고 결점을 가지지 않습니다. 바로 왕 만이 가지는 이 Body Politic 덕에 왕은 나라를 소유하고 통치를 할 권력을 사용할 권한을 가지게 된 다고 보는게 King's Two Bodies의 요체입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Body Politic을 지키기 위하여 Body Natural을 쫓아낼 수 있다는 혁명가들의 반론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암튼 왕의 신권을 위해 영구에서 만들어진 이 논리는 영국의 왕들 뿐 만이 아니라 특히 여왕들의 권한을 튼튼이 하는데 이용됩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자는 연약하고 감성적이며 남성의 보호를 받기를 좋아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정치와 같은 남성중심의 집단에서 여자의 역할은 극히 제한되고 미미하였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여왕들이 왕들 못지 않은 힘을 가졌었는데 King's Two bodies가 그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여왕의 Body Natural은 비록 연약할지 몰라도 바로 Body Politic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결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느 것 이었습니다. 오히려 여왕이여서 더 강점을 가지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첫번째로 '모성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상징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으로 그녀는 실제로 행복한 결혼생활과 9명의 자녀 그리고 높은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영국의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여성 자체의 매력을 들 수 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과 같이 자신의 미모를 정치적으로 사용할 수 도 있으며 더 강한 호소력을 지닐 수도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인기가 있었고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여왕으로는 네덜란드 첫번째 여왕인 Wilhelmina빌헬미나(1880-1962, 재위기간: 1890-1948)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William3세의 죽음으로 10살의 나이에 여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녀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여왕의 자리에 올랐기에 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이었던 Emma의 섭정을 받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섭정이 부정적으로 빠지기 쉬우나 현명한 여인이었던 Emma는 빌헬미나를 착실히 여왕으로 준비시켜 나갑니다.



빌헬미나는 즉위 당시 못났던 아버지 빌헬름3세의 과오들 덕분에 무난히 여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신이 약간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는 왕으로 별명이 고릴라 왕이었습니다. 그는 의회와 대립하기를 좋아했으며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노년에 19살의 Emma를 아내로 얻으며 비교적 잠잠해 집니다. 빌헬름3세의 죽음으로 빌헬미나가 여왕으로 오르는 과정에 있어서 Emma는 여러모로 머리를 잘 굴립니다. 먼저 그녀의 즉위에 앞서 빌헬미나를 하얀색 옷을 입혀 아름다운 소녀의 이미지의 사진을 찍어 네덜란드 곳곳에 유포합니다. 대중들은 순수한 처녀 여왕의 등극에 환호하게 되고 여왕의 자비로움 지혜로움에 대한 강한 상징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그녀는 집권 초반에는 그녀의 아버지들이 의회에 넘긴 권한들 덕에 상징적인 존재로 지내지만 점차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 갑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비로운 어머니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자전거타는 모습이나 스케이트 타는 등 일상생활에서의 모습을 사진으로 많이 남깁니다. 그녀는 남편 핸드릭과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하였는데 아무래도 남편이 여왕이라는 신분에 많이 짓눌려 불만이 낳았던 듯 합니다. 그녀는 점차 영향을 넓혀갔으며 군대를 정밀 시찰하는 등 군권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그녀녀의 할아버지인 빌헬름2세는 1848년 Reform of Dutch Constitution 당시 군주로서의 권한을 대부분 의회에 넘기는 문서에 서명합니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진짜 입헌군주제에 가까워지게 된거죠).  그녀는 그녀의 선대가 벗어버린 Body Politic을 다시 입고자 합니다. 그녀는 군대를 시찰하러 갈 때는 제복스타일의 옷을 입었으며 특히 1914년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그녀의 영향력은 기존 군주에 가까워 질 정도로 커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경외하였습니다.




1차세계대전 때 네덜란드느 다행히 중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지켰지만 2차세계대전 때는 전쟁의 발발 후 얼마 안 있어 중립국의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나치의 점령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영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 망명정부를 만들고 네덜란드 본토 안의 레지스탕스들을 지원합니다. 그녀는 라디오 등에서 강력히 나치를 비난하고 레지스탕스들을 응원하였는데 그녀의 대담하고 강인함에 영국 수상 처칠은 'The only man in the Dutch cabinet'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영국에 피신하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인들에게 강인한 여왕으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그녀는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국민들의 환호 속에 네덜란드 본토로 귀국합니다. 본토 귀국 후 몇년 뒤 자신의 50주년 축전을 벌였고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그녀의 딸인 율리아나에게 물려주고 퇴임합니다. 그녀의 퇴임식에도 많은 국민들은 그녀의 나라를 위한 노고에 크나큰 환호로 맞이해 주었습니다.



빌헬미나는 재임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국에도 많은 관심을 갖는 여왕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인도네시아, 자바 등 네덜란드 식민국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온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상황으로는 네덜란드인들의 인도네시아인들에 대한 차별과 핍박이 컸지만 빌헬미나는 그들 또한 자신의 보살핌을 받아야 될 국민으로 보았습니다. 인도네시아등은 율리우스 시절에 독립을 하게됩니다. 그녀는 퇴임 후 인도네시아 피난민들을 위한 운동이 벌어지자 피난민들을 위해 Het Loo궁전의 일부를 내주기도 했으며 죽을 때 까지 그들의 자국민과 같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인도네시아를 자신이 보살펴야 될 자신의 나라로 보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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